[강위석 칼럼] '문부국'(文富國)은 어떨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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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한국의 국가 모델로 '강소국(强小國)'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강소(强小)'는 강대(强大)와 약소(弱小)라는 말의 앞 글자와 뒷 글자로 구성됐다. 강대국은 강국 또는 대국이라고만 해도 된다.

강과 대는 같은 뜻의 말이다.강대국은 영어의 great powers를 번역한 말이다. 강대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강한 나라로서 글로벌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다. 약소국은 lesser powers의 번역어다. 약소국의 약과 소도 같은 뜻을 서로 강조 반복하고 있다.

*** 과연 强小國이 존재할까

'강소국'은 '대소국(大小國)'이나 '강약국(强弱國)'이라는 말과 같다. '큰 작은 나라'나 '강한 약한 나라'는 '둥근 네모꼴'이란 말처럼 그 대상이 실존할 수 없다. 아니면 '큰 나라와 작은 나라들' 또는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돼 전혀 다른 뜻으로 가 버린다.

사람이 하는 일은 말 단계에서 성공했다 해서 실제에서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설프거나 모순이 있는 모델에 따른 실천은 반드시 실패한다.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없을 때는 오래 걸리지만 자생적 질서가 대신 생겨나기 때문이다.

강소국 모델을 말하는 사람은 강소국의 실례로 스위스나 핀란드 등을 든다. 이 나라들은 1인당 생산은 높지만 인구가 적기 때문에 나라 전체의 생산은 크지 않다. 그러므로 개인은 부자지만 나라를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군사력도 보잘 것 없다. 적어도 글로벌 패권이라는 면에서는 말이다. 그러므로 강소국이라고는 부를 수 없고 '부소국(富小國)'이라 부를 수는 있겠다.

부소국을 국가 모델로 삼는 것은 적어도 말 자체로서 모순은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부소국' 즉 작지만 부유한 나라는 한 나라가 지향할 모델로는 이념 면에서 너무 함량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고작 부유해지는 것을 나라의 이념으로 삼는다는 것은 거대 이데올로기 콤플렉스가 있는 남한 사람들로서, 특히 북한이 채택한 국가 모델이 '강성대국(强盛大國)'이란 점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강성대국은 강대국이란 말과 같은 뜻을 담을 수 있다. 오히려 좀 더 뾰족하고 활성적으로 들리는 조어(造語)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북한이 지어낸 '고유' 명사다. 주체사상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만일 북한이 강성대국을 표방하지 않고 보통명사 그대로 '강대국'을 표방했더라면 같은 한자로 된 문자단어를 구사하는 중국의 신경을 몹시 자극했을 것이다.

강소국이란 조어법이 주는 다른 하나의 연상은 일본의 보수주의 작가이자 현재 도쿄(東京)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에게서 독립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통국가가 돼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겨뤄보려는 것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다.

그런 이시하라지만 이번 미-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회로 페르시아만에 일본이 함대를 보낼 수 있게 되자 '지금은 미국의 친구가 되자'라는 연설을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했다. 미국의 전쟁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외국에 해군을 보냄으로써 국제적인 군사세력으로서의 출발점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 국가모델 채택 신중해야

지금 한국에서 일고 있는 강소국 모델에 이런 적극적 패권 추구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패권국가나 패권추구 국가에 대한 대립 감정은 들어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스위스나 핀란드 같은 나라가 가진 참다운 장점은 그들이 국제적인 패권을 꿈도 꾸지 않음은 물론 짐짓 거센 척하려 들거나 토라진 독자노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는 수준에서는 작은 나라도 자국의 안보를 위한 방위 각오를 단단히 갖는 것이 마땅하지만, 부러움 때문이건 원한 때문이건 강(强)이니 대(大)니 하는 국제적 힘겨루기에 관련된 단어를 국가 모델에 넣고 싶은 유혹은 뿌리치는 것이 좋다.

미국.중국.러시아처럼 큰 나라로 존재하기 때문에 쌈꾼이 되는 숙명을 부러워할 것은 없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에 패배함으로써 평화국가가 되었던 축복을 스스로 박차려는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고 풍족한 살림을 이루자는 뜻에서 '문부국(文富國)'이 한국의 국가 모델로 어떨까 한다.

강위석 <월간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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