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대학생활은 이렇게] 7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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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아름다운 시절-' 대학생활을 거친 모든 이들은 그 시기를 인생의 황금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폭압적 군사독재와 저항으로 상징되는 70년대, 민주화와 변혁의 물결이 격류를 이뤘던 80년대, 신세대 문화와 다양한 개성이 분출됐던 90년대-.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대학생활을 했던 선배들에게서 자기 시대만의 꿈과 고뇌를 들어 본다.

1970년대의 대학은 극소수의 엘리트만이 다닐 수 있었던 복많은 사람들의 장소였다. 게다가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명문대에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당시 고대생들은 호랑이 문양의 학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으쓱해하면서 다녔다.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을 시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특권을 부러워했고 명문대학에 들어간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 칭찬해 주었다.

대학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20대 초반의 혈기 용솟음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70년대 중반에 입학한 고대 캠퍼스에는 그야말로 '싱그러움''활력''패기''자유''정의'가 넘쳐흘렀다. 인생의 꽃인 젊은 시절에 특권과 자유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곧잘 안암골 캠퍼스의 잔디밭과 정문앞 막걸리 집에서 미래의 희망에 대해, 이성간의 만남에 대해, 또 진리와 우정에 대해 토론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들이 가득 모여 학창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제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70년대 대학생들은 요즘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체 대학 졸업생 숫자가 워낙 적어서 졸업 후 취직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는 유리한 형편이었고,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잦은 시위 때문에 공부보다는 학생활동에 더 치중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머쓱하게 어두운 다방 구석에 앉아 여학생을 만나는 미팅은 첫선을 보는 것만큼이나 쑥스럽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본 낯선 이성들이었지만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생애를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곤 했다.

간혹 친구들과 어울려 마신 막걸리에 취해 얼큰해질 때면 "독재 정권 밑에서 자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느니… 등등 유신헌법 이후 비상조치 상황에선 불법이라 쉬쉬하던 이야기들을 목청껏 외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정말 순수했고, 정의로웠고, 공동체 의식이 투철했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낙천적인 욕구로 충만했던 것 같다.

고대는 여전히 순수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민족의 대학, 진리탐구를 위해 연구실과 도서관에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대학, 막걸리 같은 토속적인 소박함이 우러나오는 대학, 민주화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는 대학이다.

고대를 졸업하고 또 이 대학의 강단에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 벅차도록 뿌듯하다.

▶김태윤 교수는 고대 산업공학과 75학번, 미국 앨라배마주 오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8년부터 고대 컴퓨터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국제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 논문 19편 등 모두 3백30여편의 논문을 써 학계에서 '논문왕'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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