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원불교 정녀들 "여자만 독신 강요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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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원불교는 흔히 검정 치마와 하얀 저고리, 참빗으로 빗어 한오락 흐트러짐 없는 쪽머리의 여성 성직자로 상징된다. 다른 종교와 달리 여성 성직자가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다 복장도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정녀(貞女)'라고 불린다.원불교 성직자는 '교무'(敎務)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 교무는 독신이기에 정녀라 이름 붙인 것이다.

반대로 결혼 안한 남성 성직자는 정남(貞男)이라 하는데 매우 드물다.남자에겐 결혼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성직자면서 남자는 결혼하고, 여자는 독신을 지켜야하는 독특한 전통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불균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달 4일 전북 익산 중앙총부에서 열린 정녀.정남 선서식에서 독신을 다짐해야할 여성 성직자 64명중 31명이 불참했다. 원불교 초유의 '사건'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중앙총부에서도 어떻게 처리할지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서에 불참한 일부 여성 교무들의 주장은 이렇다.

"남자들은 결혼이나 독신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예비교무과정(원불교학과) 입학때부터 일괄적으로 '정녀 지원서'를 제출, 독신을 약속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특히 아직 어린 여학생들에게 그런 요구는 지나치다. 정녀지원서는 30세때 하는 정녀선서식때 내도 된다."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예정대로 선서식장은 빈자리로 남았다. 선서에 불참한 일차적 명분은 대학입학생에 대한 독신요구의 부당성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그냥 원불교학과 신입 여학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 기저에는 여성 교무들에게도 결혼과 독신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깔려있다고 본다. 여성도 가정과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만든 사회 분위기가 그런 요구를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은 종교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월에는 대한성공회 1백11년 사상 처음으로 여자신부가 탄생했고, 개신교내에서도 여성을 목사로 인정하는 교파가 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여성상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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