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모르는 미국 입양 형에 골수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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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 피를 좀 빼주면 미국에 있는 형이 금방 낫게 된대요."

미국에 입양돼 희귀병과 싸우는 형을 위해 한국의 다섯살 꼬마가 골수를 기증했다.

4일 서울중앙병원 수술대에 누운 이경호(경북 경주)군.

얼굴도 모르지만 그는 자기에게도 형이 있고, 그 형에게 도움을 주게된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에게서 골수를 받게 될 형은 미국 클리블랜드에 사는 병조(14.미국명 토머스 생키)군.

태어나자마자 원인모를 병을 앓았지만 아이를 치료할 길이 없던 가난한 부모는 1988년 그를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병조의 병명은 91년 희귀병인 판코니 빈혈로 밝혀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골수이식을 위한 혈액유전자형이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한 양부모가 최근 한국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검사 결과 둘째 정은(12)이와 막내 경호의 혈액유전자형이 병조와 같았다.

하지만 정은이는 몸이 너무 약해 이식이 불가능해 경호의 골수를 채취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심장병으로 알고 있던 정은이도 병조군과 같은 판코니 빈혈로 파악됐다.

경호의 수술을 담당한 중앙병원 소아종양혈액내과 김태형(金泰亨)교수는 "정은이가 판코니 빈혈로 확인되면 경호에게 다시 한번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崔모(39)씨는 "막내가 부모 대신 형과 누나를 살리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호의 골수를 가지러 한국에 온 병조군의 주치의 리처드 해리슨(54)씨는 5일 미국에 돌아가 병조군 수술을 집도한다.

해리슨씨는 "경호의 골수를 이식받으면 완치 확률이 80%"라며 "병조가 얼굴도 못본 어린 동생을 아프게 해 괴롭다고 했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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