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중국] 15. 시리즈를 마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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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같은 장쑤(江蘇)성 안에 있지만 난징(南京)사람들은 상하이(上海)사람들을 꽤나 못마땅해 한다. 심지어 "(딸을)상하이 사람에게 절대 시집보내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사람들이 상하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 사람들의 관계도 좋지 않다.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을 "어깨에 힘만 주고 다니는 부류"라고 욕하기 일쑤다. 베이징 사람들도 상하이 사람들을 "시시하고 돈만 아는 사람들"이라며 깔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뿐 아니다. 인접한 푸젠(福建)성과 광둥(廣東)성 사람들은 서로 '소가 닭 쳐다보듯'한다. 산시(陝西)와 산시(山西), 후베이(湖北)와 후난(湖南)의 이질감도 깊고 넓다.

시리즈를 위해 다녀 본 중국의 여러 곳은 이처럼 문화적 이질감이 다양했다. 각기 지내온 역사적 과정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본바닥에서 키워내고 가꿔온 문화적 토양도 마치 다른 국가의 그것처럼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한족(漢族)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하는 중국인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문화는 다면복합체다. 단일한 선과 점으로 짜여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문화와 혈통이 한데 뭉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비치는 면모는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오늘날 중국을 말할 때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내는 배경은 이런 점에서 비롯한다. 중국의 학술계는 요즘 들어 한족의 정의에 대해 "다원복합적이며 여러 민족이 융합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개념"이라고 말들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 최초로 등장한 통일정부 진(秦)왕조도 진시황을 비롯한 서방 융(戎)계통의 왕실과 산시(陝西) 관중(關中) 지역의 한족, 중원과 기타 지역의 여러 혈통들이 한데 뭉쳐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황제(黃帝)의 자손으로 서북 황허(黃河) 유역에서 발원한 용(龍)의 계승자(傳人)'라며 한족의 단일성을 강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민족간의 융합이라는 과정에서 찾고 있는 추세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의 문화는 남.북을 중심으로 크게 차이를 드러낸다. 베이징의 '경파(京派)'와 상하이의 '해파(海派)'는 각각 중국의 남.북문화를 대표한다. 언어와 생활 습관, 사람들의 기질, 경제와 정치를 대하는 시각 등에서도 남.북의 중국인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푸젠성 샤먼(厦門)대학 린치취안(林其泉)교수는 "참혹한 전란과 전제왕권의 압박을 피해 한족들이 끊임없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양쯔(揚子)강을 중심으로 갈라지는 중국의 남방문화는 이민문화의 속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특히 남으로 이주한 한족들이 원래 이 바닥에서 거주했던 백월(百越:여러 갈래의 비에트족) 등 소수민족들과 융합하면서 언어와 혈통이 세분화하고 이는 다시 북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방만의 특징으로 발전한다.

서남에 자리한 쓰촨(四川)성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약 5천여년 전의 싼싱두이(三星堆)문명을 기반으로 발달했던 촉(蜀)문화에 산시(陝西)와 인근 후베이로부터 이주해 간 한족의 문화가 합쳐지면서 파촉(巴蜀)의 문화가 생겨났다.

광둥은 월족의 문화를 모태로 하고 진대 이후 남하한 한족의 문화, 푸젠계에 해당하는 조산(潮汕:차오저우와 산터우)문화가 융합했다. 장쑤와 저장 등도 각각 오(吳)와 월(越)족의 문화에 이주족인 한족의 문화가 유입해 이 지방 특유의 언어와 풍속, 기질 등을 낳았다.

남방의 이민 문화는 현실적이며 즉흥적이다. 중국의 여러 학자들은 남방 문화의 특징을 "변화에 능하다(善變)"고 말한다.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양태라는 분석이다. 금전적인 이익에 민감하고 주위의 시선이나 지적에 훨씬 조심스레 대응한다. 체면을 중시하고 '실용'이라는 입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집단과 집단 간의 관계를 조율한다.

이에 비해 북방인들은 호방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경제보다 정치적인 사안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보다 정체성의 문제에 더 매달리는 성향을 보인다. 술 먹는 버릇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남방보다 직선적이며 호방하다.

남방은 '이주(移住)'에서 비롯한 문화고 북방은 오랜 기간의 '정주(定住)'에서 생겨난 문화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남.북방 사람의 기질을 표현하자면 남방인은 변화에 민감하고 처세에 뛰어난 '원(圓:둥금)'에 해당하며, 북방인은 고지식하고 격식에 집착하는 '방(方:네모)'을 대표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따져 보면 중국문화의 남.북 차이는 사소하다. 크게 보아 중국의 문화는 '관시(關係)'의 문화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전통사회는 유교적 전통에 혈연을 중심으로 한 종법(宗法)적 질서가 지배했던 곳이다.

게다가 우리가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중국에 전란이 매우 잦았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족의 대거 남하도 사실은 외족의 빈번했던 침입, 왕권과 지방 권력간의 지속적인 전쟁 등이 배경이다.

아울러 중국 사회에서는 혈족과 혈족, 동향 집단과 집단 사이의 싸움도 잦았다. 이른바 '계투(械鬪:무기로 벌이는 싸움)'도 중국인 사회에서는 일상사였다. 중국사회의 관시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성장했던 듯 싶다. 전란의 와중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혈연과 동향끼리의 연대가 필요했고, 이는 나아가 좀 더 큰 집단간의 유대로 이어져야 했다.

이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관시다. 배타적 개념인 '쯔지런(自己人:우리편)'이라는 말이 요즘도 널리 쓰이고, 좀 더 확대돼 중국사회 특유의 폭력조직의 발호로 이어지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시리즈 막바지에서 다룬 홍콩과 대만은 중국 이민사회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곳이다.

중국문화에는 이렇듯 전란과 왕권의 수탈로 인해 벌어졌던 한족과 이족간의 '융합', 그 과정에서 빈발했던 작은 집단끼리의 '경쟁'이 공존한다. 전자는 여러 민족과 문화를 한 곳에 녹여 보다 다양하고 세련된 문화를 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후자는 누구와의 싸움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생명력을 중국문화에 가져다 줬다. 오늘날 개혁.개방의 중국이 풍기는 강한 면모들은 이러한 융합력과 사회 각 단위에 스며들어 있는 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광종 기자

**** 광둥.민난어 25% 한자 표기 안돼

**** 광둥.민난어 25% 한자 표기 안돼

중국에 사투리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푸젠(福建)성의 민난어나 광둥(廣東)성의 광둥어 상당 부분이 한자(漢字)로 표기가 안된다는 점은 잘 알지 못한다.

대만 국립 정치대학교 민족학과 린슈처(林修澈)교수는 "민난어나 광둥어는 지속적으로 한족 언어의 영향을 받아 왔으나 현재까지 한자로 표기가 불가능한 부분이 전체 단어의 25% 가량 된다"며 "이는 민난어와 광둥어 등이 원래의 한족 언어와는 다른 계통에 속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林교수는 양쯔강 이남 지역이 본래 비에트족인 백월(百越)족이 살았던 지역으로, 이곳에 북방의 한족이 이주하면서 현지의 언어와 한족의 언어가 한데 엉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양쯔강 이남의 언어 분포는 매우 복잡하다.

예전(특히 삼국시대) 오(吳)에 속했던 상하이와 장쑤.저장 등지의 언어는 '오방언(吳方言)'이라고 부르며 크게는 장쑤 남부지역 언어를 포함하는 상하이어와 우시(無錫)어로 나뉜다. 푸젠의 민난어와 광둥어도 큰 어족(語族)으로 분류되는 언어로, 광둥어는 지난 세기 초반인 민국 정부 당시 표준어를 정할 때 현재의 베이징어와 막판까지 경합했을 정도로 세력이 대단하다.

이밖에 인구가 1억이 넘는 쓰촨성의 언어도 큰 어족에 속하며 광둥과 푸젠.쓰촨에 분산해 거주하고 있는 객가(客家)언어도 사용 범위가 작지 않다. 남방의 언어 분포는 크게 이처럼 분류하지만 실제는 더욱 세분된다.

예를 들어 난징의 언어는 지리적으로 상하이에 가깝지만 북방 어계(語系)에 속하며, 남송의 수도였던 항저우도 관화(官話:정부 사용 언어)의 영향을 받아 상하이어와는 차이가 있다. 북방 언어는 남방에 비해 갈래가 많지 않다. 지리적으로 평원이 발달해 인적.물적 교류가 잦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표준어는 베이징어다. 영어로 베이징 표준말을 '만다린(mandari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만주족 대인을 일컫는 '만다렌(滿大人)'이 변형된 것으로 베이징어가 청대 만주족의 언어적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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