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솔직히 표현 '버자이너 모놀로그' 큰 호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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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연극배우 서주희(34)는 지난달 28일 어머니 권영애(65)씨가 '성(性)고백'을 하던 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무대는 서주희가 지금 열연하고 있는 대학로 컬트홀. 매회 초대 손님과의 대담코너가 있는데, 그 날은 어머니가 주인공이었다. 처음 모녀가 한 무대에 선 것이다.

"이 작품을 한다기에 딸에게 그랬지요. 만약 여성의 성기를 말해야 할 때는 우물우물하라고요. 제 딸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내심 걱정은 됐어요." 그리고 다음. 서주희는 딸이 아닌 배우로서 초대손님(어머니)의 성생활을 물었다."(머뭇거리며)최근까지도 했지요."

이날 어머니의 고백은 서주희에겐 '충격'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저는 어머니가 '여자'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일 따름이었죠. 나이 60이 넘은 어머니에게도 여성의 욕망이란 게 있다니…. 더구나 아버지(올해 작고했다)는 왜소했고 건강도 안좋으셨는데. 아무튼 그날 어머니의 말은 참으로 통쾌했어요."

서주희의 일인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이런 솔직함이 장점이다. 여성의 성에 대한 당당한 질문과 대답.

여성의 성기를 표현하는 순우리말(일찍이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이 단어가 가면을 벗고 당당히 생활 속의 언어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역설했다)이 부지기수로 난비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그걸 단순한 성적 유희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객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분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는 데에 저도 놀랐습니다. 애당초 저는 페미니스트도 아니었으니 목표는 아주 단순했지요.

관객들과 함께 금기를 깨고 '우리의 성(기)'을 당당히 이야기하자, 그 정도였어요. 성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내가 이제 그걸 '욕망'할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니겠어요."

미국 페미니즘 계열의 작가 이브 엔슬러 원작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불결하다고 치부된 여성의 '그것'을 소재로 한 아홉개의 장(章)으로 구성됐다.

'그것'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사례들이 중심이다. 한국의 역사성을 가미하기 위해 연극은 원작에 없는 종군위안부 문제도 추가했다. 서주희는 그 다변한 사례들을 '천의 얼굴'로 보여준다.

"어느날은 임신 중인 새댁이 와 너무 좋은 태교였다고 했고, 어느날엔 한 남성이 찾아와 '아내가 성에 대해 너무 완고해 힘이 드는데, 아내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다'는 고백도 했어요. 20대 젊은이들은 이성 친구와 함께 보겠다는 소감도 말했구요."

실제로 홈페이지 (http://www.vaginamonologues.co.kr)의 '허 스토리' 코너에는 이와 같은 솔직한 관극 소감이 많이 올라있다.

서주희는 "이번 연극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여성(혹은 남성)들의 가치관 변화에 도움을 준 것 같다"며 "고등학교 순회 공연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로 연극배우 10년 차인 서주희는 '레이디 맥베스' 등 숱한 화제작을 통해 검증된 연기파 배우다. 올해 영화 데뷔작 '꽃섬'으로 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신인여우상을 탔다. 1월 13일까지.

02-516-1501.

정재왈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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