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대표에게 듣는다] 이회창총재 "중립내각 구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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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는 내년 12월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시점에서 정국의 방향과 대선의 향배를 알아보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4일자)와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5일자),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6일자)의 인터뷰를 싣는다. 연쇄 인터뷰에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후 당을 어떻게 끌어가려 하는지, 정계개편은 가능한지, 각 당의 대선전략은 무엇인지를 3당 대표의 육성을 통해 짚어본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중앙일보의 인터뷰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총재실에서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는 김두우(金斗宇)정치부장이 했다. 李총재는 까다로운 질문을 잘 받아넘겼다.

1997년 대선 때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입장이 정리돼 있었고, 언짢을 수 있는 대목에서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선보였다. "당내에 대선 경쟁자가 별로 없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대통령감은 우리 당에 다 몰려 있다"고 받아넘겼다. 공격적인 질문이 계속되자 그는 "오사마 빈 라덴식 질문"이라며 웃음을 유도했다.

-교원정년 연장안에 대해 끝까지 밀어붙이실 겁니까.

"러시아.핀란드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 여론을 듣고 내심 놀랐습니다. 당론과 반대되는 쪽으로 강하더군요. 10.25 재.보선 이후 우리 당이 거야(巨野)가 돼 수(數)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것이죠. 재.보선에서 3석을 얻었지만 여전히 과반수엔 못 미칩니다. 숫자로 강행하지는 않을겁니다.좀더 진지하게 우리 입장을 국민에게 설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적자금에 대한 감사원 특감 결과 상상했던 것 이상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정권에서도 큰 부담이 될텐데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공적자금을 조성할 때 제대로 써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동의해줬고, 정부 당국자도 잘못 쓰이는 일이 없도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감사원 발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확인해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금융질서를 확립하고 구조조정을 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불가능해질 겁니다. 철저히 하겠습니다."

-신건 국정원장과 신승남 검찰총장의 사퇴를 관철할 것입니까. 愼총장이 5일 국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탄핵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야당이 탄핵을 할거냐, 안 할거냐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솔직히 불만입니다. 문제는 청렴과 공정, 직업적 자존심을 지켜야 할 국정원과 검찰 내에서 비리가 행해졌고, 검찰 관계자가 이를 묵인하는 행태입니다. 또 응분의 책임을 묻는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요."

-김대중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사퇴한 뒤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어떤 조치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왜 총재직을 떠났습니까.정파적 이해에 얽매여 공정한 국정운영을 못하지 않았습니까. 총재직 사퇴만으로 국정이 쇄신됐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마치 1백m 스타트 라인에 섰다고 해서 뛰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합니다. 중립적이고 야심적인 전문가로 중립내각을 구성, 국정을 잘 수행하고 내년 양대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게 국정쇄신의 최소 필요조건입니다."

-金대통령과 만날 계획입니까.

"때가 됐으니 모양으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필요한 얘기를 하는 만남이 돼야 합니다."

-이회창 대 반(反)이회창의 정계개편설이 있습니다. 제3의 영남후보론도 나오고요.

"정치의 목표와 지향점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어야지, 특정인을 포위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이합집산에 맞춰져선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 수준의 정치는 그만해야 하고 확신컨대 국민이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李총재에게 별로 호감을 보이지 않는데요.

"그 분으로 인해 행정부와 인연을 맺게 됐고 정치권에도 들어왔습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충청권 의원과 정치인을 영입하는 최종목적이 자민련 와해입니까.

"자민련을 와해 또는 분열시킨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충청권의 현지 사정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자민련과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사안별로 공조해 나갈 것입니다."

-대선이 1년 정도 남았습니다.민주당에선 5룡이니 6룡이니 하는데 한나라당엔 경쟁자가 없지 않습니까.

"허허. 대통령감은 한나라당에 다 몰려 있습니다."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합니까.

"해야죠. 우린 경선의 역사를 세운 정당입니다. 뒤끝이 조금 묘하게 됐지만…. 전통을 지킬 것입니다."

-李총재의 지지도가 영남에선 압도적이지만 호남에선 열세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돼도 이같은 지역문제를 풀지 않으면 국정수행에 엄청난 부담이 따를텐데요.

"(호남에선)열세가 아니라 영패나 다름없죠(웃음). 그러나 다음 시대엔 DJ 대 반DJ 상황도 없어질 것이고, 정말 국가.국민을 위해 뛰는 지도자에게 호남권도 동조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李총재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2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 지지율이 낮은데요.

"많이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 우선 정치'라는 큰 틀에서 국가이익과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픈 질문을 몇 가지 하겠습니다.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으셨지요.

"부덕의 소치이겠지요. 다만 정치에서 원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고 국민도 바라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민은 인기에 영합하는 지도자보다 인기를 잃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다고 믿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에 포용력이란 잣대를 갖다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서민으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서민의 아픔을 진정으로 알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전 말단 공직자의 아들로, 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부친이 굉장히 청렴했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해 어렵게 자랐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어린시절 점심을 종종 굶었다고 했더니 거짓말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남북관계가 경직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전략적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경제를 도우면 북한은 평화를 주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최근 러시아와 핀란드를 방문했는데 성과가 있었습니까.

"러시아에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등에 적극 동참할 것과 꽁치.명태 문제에 대해 배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핀란드에는 여수해양세계박람회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나아갈 길이 강소국(强小國)이라고 보십니까.

"우리가 소국은 아니죠. 중간국가쯤 되겠지요. 그러나 발전의 기초는 강소국이라고 불리는 핀란드나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법의 지배가 선행돼야 합니다. 둘째, 미래의 성장에너지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최소한 6% 성장 잠재력을 키워나가는 정책을 펴나가야 합니다."

정리=고정애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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