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철도 민영화·소방청 신설 서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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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후 당정간 정책조율에 혼선의 폭이 커지고 있다.

5일 민주당 확대 간부회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 민영화 방안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날 논의는 박종우(朴宗雨)정책위의장이 "철도 민영화 법안이 내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지만 우리 당 건교위원들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먼저 이인제(李仁濟)고문이 "철도 민영화가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타이밍의 적절성'은 중요한 문제"라며 "이 시기에 추진했다가 반발이 극대화하면 나중에 추진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신중론을 피력했다.

노무현(盧武鉉)고문도 "민영화가 하나의 조류이기는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며 민영화에 맞지 않는 산업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 결론은 "당과 정부가 긴밀히 논의해 입장을 마련하자"는 것. 하지만 당 관계자들은 "분위기로 볼 때 내년 7월 시작할 예정이던 철도 민영화는 연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스산업 민영화도 비슷한 처지다.정부에서 가스공사 민영화 관련 3법을 국회 산자위에 내놓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속도 조절'을 이유로 반대한다. 논란 끝에 다음 국회에서 논의키로 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은 "사실상 백지화한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

민주당의 이같은 자세는 임인택(林寅澤)건설교통부 장관이 "철도 민영화는 물론 주공과 토공의 통합도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해 온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당정간 정책조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 정책위 관계자는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노조 반발 등 분란의 소지가 있는 법안은 처리를 늦춰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지만, 金대통령이 총재직을 물러난 후 청와대를 의식하거나 명분을 중시하는 풍조가 엷어진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에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는 사례도 있다. 소방청 신설 법안은 민주당 김충조(金忠兆)의원이 냈지만 정부는 "작은 정부에 역행한다"며 반대했다.

최근 공적자금 감사 결과를 놓고 민주당이 여당으로선 이례적으로 "책임있는 공무원을 처벌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도 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변화한 당정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2일 金대통령의 유럽 순방 출국장에는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한명도 나가지 않았다.

김정하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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