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문화 패트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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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생존 당대에 유럽의 거장으로 통하던 작가 괴테와 조금 젊은 작곡가 베토벤 사이에 유명한 첫 만남이 있었다. 무대는 1812년 보헤미아 지방 온천지. 산책길에 나선 두 거두는 마침 귀족 일행과 마주치게 된다. 루돌프 대공이었다. 괴테가 길 옆에 비켜서 허리를 깊숙하게 굽혔다. 베토벤이 문제였다. 머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뒷짐지고 내쳐 걸었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대공 일행이 베토벤에게 외려 눈인사를 건네야 했다. 명저 『베토벤의 생애』의 저자 로망 롤랑은 이 삽화로 두 사람의 성격차를 설명하려 했고, 그래서 괴테가 시건방진 베토벤에게 질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상징이다. 근대 초입 독립적으로 줄달음치던 예술과 신분질서 사이의 미묘한 권력관계의 역전 말이다. 실은 베토벤은 열혈 공화주의자였다.

어쨌거나 이 시대 예술의 대립항목은 신분이 아니고 돈과 권력 쪽이다. 일단 예술과 돈 사이가 가까우면 안정된 사회다. 귀족들의 패트런(후원자) 역할을 부자들이 맡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패트런에 근접한 이로 생존 기업인 중 금호그룹 박성용(70)명예회장이 꼽힌다.

6년 전 그룹회장을 물러나며 "서울 도심에 콘서트홀을 건립하겠다"고 말했던 멋쟁이가 그다. 홀 소식은 요원하지만, 실내악단 금호콰르텟을 10년째 키운다. 유럽의 한 패트런 이름을 따서 그를 '한국의 에스테르하지'라 부르는 이도 있다.

기분 좋은 일이다. 한데 요즘 균형감각을 잃은 그의 '안목' 때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례가 1일 금호미술관 아트숍과 골프장 등 세곳에서 오픈한 '아프리카 돌 조각전'이다.

출품되는 쇼나 조각 자체야 아프리카의 보석이다. 1980년대 찰스 왕세자 등 저명 컬렉터들이 열광했던 품목이다. 문제는 지난 여름 성곡미술관에서 대규모 쇼나 조각전이 열린 뒤끝이라는 점이다. 아무런 차별성도 없는 전시를 몇개월 뒤 갖는다는 건 미술동네의 상식 밖이다. 그것도 판매가 전시목적이라니! 이해못할 건 또 있다. 성곡전(展)은 아프리카에 열광한 한 시인이 퇴직금을 털어 일궈낸 열매다.

그 성공으로 전문 전시공간을 문화의 불모지 일산지역에 오픈한 게 지난 주말이다. 이 시점에 朴회장이 짐바브웨에서 모았다는 4백여점의 전시는 가난한 시인을 울리는, 패트런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중복투자라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국내 패트런들은 아직은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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