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권·정의·평화 … 갈 길 남은 5·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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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30주년 기념 전야제가 17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추모 행렬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광주 항쟁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 캠퍼스엔 5월의 따스한 햇살이 제공하는 평온함이 퍼져 있었다. 심포지엄 장소인 국제관 국제회의실엔 몇몇 학생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캠퍼스 한쪽에선 5·18 사진전도 열렸지만, 1980년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증언하는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드물었다.

그나마 이 심포지엄마저 없었다면 ‘5·18 30돌’은 쓸쓸할 뻔했다. 한국정치사회학회(회장 임현진)와 한국정치연구회(회장 김용복)가 부랴부랴 마련한 자리다. 5·18 관련 본격 학술 행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던 ‘5·18 광주’는 87년 6·10항쟁 이후 점차 국가가 주도하는 기념행사의 하나로 정착됐다.

◆‘실패한 성공’…민주화의 원천=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인 87년 6·10항쟁의 결정적 밑거름은 5·18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5·18 운동에는 ‘실패한 성공’이란 역설적 표현이 따라붙는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고려대 심포지엄 기조강연을 통해 “5·18은 처절하게 짓밟히고 패배했지만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성장시켰다”고 정의했다. 5·18이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부활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민주화운동 출신의 정권이 두 차례 들어서는 바탕이 됐고, 우리 사회가 보수 일변도의 시각을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제도화된 저항 정신=87년 6월 항쟁 이후 5·18은 국가 주도 기념사업으로 제도화됐다. 93년 이후 5·18 관련자 명예회복과 배상 및 보상이 이뤄졌다. ‘폭동’으로 규정됐던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됐으며, 국가기념일이 됐고, 망월동 묘역은 국립묘지가 됐다.

5·18의 제도화는 민주화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에게 이 같은 제도화는 아쉽기만 하다. 민주항쟁의 기억이 제도 속에서 박제화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5월 광주 정신’을 어떻게 오늘의 현실에서 재현할 것인가가 이들의 화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980년 서울-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를 연 것도 ‘5월 광주 정신’을 되살리려는 시도였다. 조광 고려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대 사건에 대한 기억과 기념은 민주주의·인권·정의·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화시킬 때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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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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