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회 주최 '보안법 개폐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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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개폐에 관한 헌법적 평가’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서울대 한인섭(법학.(左))교수가 그림을 그려가며 보안법 폐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에서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개정론과 폐지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모두 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함에 따라 학계는 보안법 폐지의 위헌성 여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6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헌법학회(회장 이관희.중앙일보 후원) 주최 '국가보안법 개폐에 관한 헌법적 평가' 토론회는 이 같은 학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이날 보안법 폐지론의 주제발표자로 나선 서울대 한인섭 교수는 보안법과 현실의 괴리를 먼저 짚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용천역 폭발사고 때 여야가 모두 구호품을 전달하는 등 보안법 위반자가 이 땅을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개정헌법에는 '평화적 통일정책을 지향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는데, 이는 헌법이 북한을 평화통일의 상대로 받아들인 선언"이라며 "이 같은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은 하위법인 보안법의 폐기 내지는 적용범위의 제한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보안법은 우리의 선진화된 수준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하는 후진성과 독재의 낙인"이라며 "낡은 것은 박물관으로, 어둠의 상처는 추억으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때"라며 보안법 폐지를 역설했다.

보안법 개정론의 주제발표자인 동국대 김상겸 교수는 "현 시점에서 확대된 남북교류나 시대적 상황에 비춰 보안법 존폐에 대한 논의와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보안법이 분단과 북한의 위협 속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해 온 사실이 있고 법이 오.남용될 소지가 거의 없어진 만큼 보안법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폐지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 헌법이 얼마든지 수용하고 있는 만큼 보안법이 갖는 순기능적 면을 중심으로 역기능적 면을 개정하면 될 것"이라며 개정론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보안법 폐지가 오히려 헌법 정신에 잘 맞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1당 지배나 1인 지배를 배격하는 의미'라고 하고, 그 첫째 요소로 기본적 인격의 존중을 들고 있다"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것은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국민의 기본권을 옥죄고 있는 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며, 그것이 헌법 질서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보안법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 민주주의' 원칙을 구현하는 법률"이라며 "보안법으로 인한 인권 침해 문제가 있다면 개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그는 "보안법 폐지는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헌법상의 국가 보위 및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하고,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라며 보안법 폐지의 위헌성을 부각시켰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송호창 변호사가 "보안법을 폐지하고 21세기형 국가안보체계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헌변(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의 박준선 변호사는 "헌재와 대법원에 의해 보안법의 합헌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만큼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개정 논의면 충분하다"고 맞섰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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