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60년 전 일본군 만행 사죄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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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말 죄송합니다. 죽는 날까지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사죄하고 싶습니다."

한 일본 노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종군위안부의 참상과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다.

주인공은 1940년부터 5년10개월간 중국 일대에서 참전한 구보타 데쓰지(久保田哲二.82.히로시마현 쿠레시)전 일본군 상사.

구보타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지난 24일 대구에서 연 '남경대학살 참전 일본군인 증언강연회'에 나와 당시 자신의 체험과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위안소에서 10대로 보이는 조선인 처녀가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군대가 직접 위안소를 관리해 우리는 군표를 들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곳을 들락거렸고…."

일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노인 둘과 함께 피난가는 민간인 여덟명을 죽였고, 지나가는 여성을 강간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살육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차마 할 수 없는 숱한 만행을 저질렀어요. 군국주의가 심어준 '조선인과 중국인은 인간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우월감 때문이었습니다."

구보타는 정신대 할머니들과 여대생, 전교조 회원 등 1백여명 앞에서 한시간 동안 이렇게 증언한 뒤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때 정신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왜 뒤늦게 이제야 증언하느냐"고 구보타를 꾸짖었다. 그는 "정말 죄송하다. 한동안은 경찰의 감시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며 용서를 빌었다.

구보타는 2년 전부터 일본 전국을 돌며 학생들에게 침략전쟁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요지로 강연하고 있다.

시민모임의 곽동협 운영위원장은 "가해자인 일본의 공식 사죄와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증언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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