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정] 中. 재정위기가 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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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까지 재정 적자는 적어도 우리에겐 남의 일이었다. 실제 우리나라는 1997년 경제 위기를 맞을 때까지 세계에 유례없는 탄탄한 재정을 자랑했다. 그런 전례만 믿고 지금도 재정 위기를 걱정하면 '하늘 무너지는 걸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기 일쑤다.

그러나 재정 위기를 맞았던 외국의 사례는 지금 우리가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따라 '지속 성장이 가능한 길로 들어서느냐, 아니면 재정 위기의 파국을 맞을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실질적인 나라 빚이 4백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가 직접채무가 1백20조원이라는 장부상 숫자만 내세울 때가 아니다.

◇ 일본,경기 부양에만 매달리다 적자만 늘려=지난해 말 일본의 국가 채무는 6백66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백30%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72%를 훨씬 넘어 선진국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다. 올들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피치 등 세계적 신용평가 회사들이 일본의 국가신용 등급을 무더기로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튼튼하기로 세계 최고였던 일본이 재정 적자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부터다. 위기의 싹이 틀 무렵인 90년대 초 일본은 금융 부실 해소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집어넣고 그것도 모자라 경기 부양에 1백조엔(약 1천조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런 천문학적인 돈과 초저금리로도 일본은 꺼져가는 경기에 불을 지피지 못했다. 금융 부실을 놔둔 채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를 생각지 않은 탓이다. 또 거품 경제 붕괴로 움츠러든 민간 소비는 단순히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춘다고 살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의 재정 건전화 노력은 눈물 겨울 정도였다. 96년 경기가 반짝 호전(GDP 성장률 3.4%)된 틈을 타 하시모토(橋本)내각은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소비세를 올리고 일정액 이상의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재정 구조 개혁법'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오부치(小淵)내각은 24조엔의 돈을 풀면서 다시 경기 부양으로 돌아섰다.

올해 출범한 고이즈미(小泉)내각은 내년도 예산을 사상 초유의 긴축으로 짰다. 10년간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나라 살림만 더 어려워져 더 이상 나라 빚을 늘려선 안된다는 게 절대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재정 건전화로 장기 호황 기반 다져=최근 미국 하원은 1천억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통과시켰다. 15년에 걸친 재정 건전화 노력으로 두둑해진 나라 살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뿌리 깊은 재정 적자로 고생해 왔다. 6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 전비(戰費)를 너무 많이 쏟아붓는 바람에 시작된 재정 적자는 70년대 말에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80년 마이너스 성장 속에서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는 세금을 깎아 경기를 회복하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쳤다.

세금을 깎아주면 재정 적자가 더 커진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세금을 줄이면 기업 투자가 늘고 경기가 회복돼 세금 총액이 늘어 나라 전체의 세수가 늘어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경기는 더 꺾였다. 적자는 카터 행정부 때보다 80%나 늘어났다.

30년 만의 대호황(83~84년)속에서도 나라 빚은 늘어만 갔다. 83년 재정 적자는 1천9백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85년엔 재정 건전화법(GRHⅠ), 87년엔 수정법(GRHⅡ),그리고 90년엔 '재정 지출을 늘릴 경우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예산통제법'도 마련했다.

그런 노력이 겨우 열매를 맺은 게 90년대 초 시작된 10년 장기 호황이었다. 80년대부터 추진한 각고의 재정 건전화 정책이 '신(新)경제'와 맞물려 15년 쌓인 나라 빚을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아르헨티나, 방만한 운용으로 파탄에 이르러=아르헨티나가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하는 해가 89년이다. 재정 적자가 GDP의 7.6%에 이르는 가운데 성장은 마이너스 6.2%였다. 연말 인플레가 5천%, 다음해 3월에는 2만%에 이르렀다. 40년 넘게 진행된 방만한 나라 살림과 이에 동원된 통화 팽창이 가져온 결과다.

그 씨는 46~55년 페론 정부의 대중 인기주의에 의해 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의 불황 속에 선심성 예산.임금 인상으로 재정은 고갈돼 갔다. 40년대의 평균 인플레 10%는 50년대에 30%로 올라갔다.

56년 군사정권의 재정 건전화 노력으로 물가가 잡히는 듯했으나 73년 페론의 재등장으로 안정화는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 근로자에 대해서도 임금 물가연동제가 적용되고, 경제개발 전략으로 수입대체 산업에 대해 막대한 자금이 지원됐다.

정부는 국채와 중앙은행 대출로 적자를 메워갔다. 통화 팽창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이것은 통화가치 하락과 임금 상승을 통해 다시 물가 상승으로 되돌아오는 총체적 악순환이 고착됐다. 결국 80년대 말 초(超)인플레의 수렁에 빠졌다.

페소화와 달러간에 1대1 환율 고정, 공무원 58% 감축,산업보조금 대폭 삭감 등 89년 메넴 정권의 혁명적 안정화 조치의 효험도 반짝에 그쳤다. 올해까지 포함, 아르헨티나는 다섯번의 채무 상환 불능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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