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전달되지 못한 '만해문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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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24일 열린 출판사 창비 주관 문학상 시상식은 지난해에 비해 단출하고 조금은 허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날 동시에 시상된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상.창비신인문학상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만해문학상이 수상자인 북한 소설가 홍석중(63)씨에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물론 홍씨가 시상식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창비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말 홍씨의 장편소설 '황진이'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직후 통일부의 접촉 승인을 얻어 홍씨의 수상 사실을 북측 조선작가동맹에 알리고 작가에게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라고 밝혔다. 시상식의 '썰렁함'은 지난해 만해문학상 수상자가 두 명(박범신.유홍준)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자만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시상식 곳곳에서 만해문학상이 전달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시상에 앞선 인사말에서 창비 편집인 백낙청씨는 "남북작가대회 개최를 위한 사전 만남에서 남측 작가들이 홍씨의 수상 사실을 통보하자 북측 작가들이 크게 기뻐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8월 남북작가대회가 예정대로 열렸더라면 상이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풍산 홍씨 대종회 회장으로 홍씨의 당숙뻘 되는 남한의 홍기원씨는 대신 밝힌 수상소감에서 "집안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당사자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홍씨는 장편소설 '임꺽정'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벽초 홍명희의 손자다. 남한의 문학상이 북한 작가에게 처음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발표 당시 화제를 모았다. 홍씨가 시상식에 참석했더라면 1940년대 말 이후 50여년간 단절된 민족문학사가 다시 이어졌다는 상징성도 컸을 것이다.

창비는 상과 상금 1000만원을 보관하고 있다가 서울이든, 평양이든, 금강산이든 가능한 곳에서 홍씨에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상의 전달을 가로막는 한반도 주변 정세와 좀처럼 활로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다.

마침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 핵과 관련해 밝인 입장에 북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순수한 문학적 가치판단에 의해 수상자가 정해지는 문학상 만이라도 '비정치적'인 길로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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