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8 따라잡기] 토씨·낱말 이해하면 논술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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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떻게 하면 논술을 잘 쓸 수 있죠? 고 3생들이 사뭇 진지하게 물어 온다. 뒤늦게 허둥거리며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이다.

하지만 어쩌랴, 돌아온 '탕아'들을. 축 처진 어깨를 다독거리며 함께 머리를 맞대는 수밖에! 일단 간단한 논제를 하나 주고 써 오라고 한다. 이 녀석이 그냥 집에 갔나 궁금해질 때쯤 와서는 쭈뼛거리며 말한다. "쌤, 다 썼는데요."

맙소사. 몇 줄 읽기도 전에 '탕아'의 얼굴을 다시 올려 보게 된다. 문제에서 요구하는 방향과 무관하게 쓴 경우가 십중팔구이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나마 나는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탕아가 또 뛰쳐나갈지도 모르므로.)

이를 테면 문제에서는 '학교 교육이 초래한 위기의 이유에 대해 논술하시오'라고 했건만 비분강개의 어조로 학교 교육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현상을 잔뜩 열거하는 식이다.

또 '~의 차이점을 밝히고 ~의 영향에 대해 논술하라'고 했는데 달랑 차이점이나 영향에 대해서만 쓰고 마는 경우다. '그리고'라는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니 글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논술은 단순히 글쓰기가 아니다. 논술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는 시험이다. 따라서 논술을 제대로 대비하려면 문제와 예시문을 정확히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그 자체가 모두 해결의 열쇠다. (만일 필요 없는 표현이 있다면 그 문제는 잘못 낸 것이다!)당연히 낱말 하나 토씨 하나가 모두 출제자의 답안 요구 방향과 직결된다. 낱말과 토씨, 문장, 글 전반의 문맥을 아우르며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가장 기본이다.

이는 다양한 글을 읽으며 철저히 독해의 원리와 방법을 공부하는 게 가장 최선책. 하지만 만일 한 권의 책으로 압축 학습하고 싶다면 나는 주저 없이 최시한 교수의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문학과지성사)를 권한다.

이 책은 기존의 잘 알려진 글에서 필자와 독자의 오류를 철저하게 분석해내고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연습문제와 답을 달아 실제적이면서도, 단순한 문제집이나 참고서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책이다.

독해력을 키우기 위해 평소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잘 쓰여진 짧은 글, 이를 테면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에세이.단편소설 등을 낱말이나 문장.단락을 염두에 두며 읽는 것이다. 또한, 둘 이상이 퀴즈를 풀며 토론하는 공부 방법도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글을 읽고 문맥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낱말을 지운다. 그런 다음 서로 답을 맞혀 보고 만일 틀린 답이 나왔다면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 본다. 낱말을 중심으로 문맥을 철저히 중시하며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해력을 키울 수 있다.

토론이 쉽게 결론을 못내고 말싸움으로 이어질 때는 어떻게 할까? 이때는 어른들이 나서서 판단을 내려 준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지만 여기서 어른이란 책을 많이 읽고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어른들만을 뜻한다. (짧은 글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른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늙은 '탕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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