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급한 경기 낙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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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분기 경제성장률이 1.8%(실질 국내총생산 기준)를 기록했다. 9.11 테러 여파까지 겹쳐 잘해야 1%를 밑돌 것이라던 주요 연구기관들의 전망을 뒤엎은 실적이다. 미국.일본은 물론 대만.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조차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일궈낸 성장률이라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성적이기도 하다.

국내외 경제 환경도 비관 일색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의 주가가 테러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주요국 증시가 동반 상승하고 있으며, 산유국들의 감산(減産)합의 실패로 국제 유가가 30% 이상 하락하면서 국면전환을 이끌고 있다.

최근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 시세는 우리 경제에 유가만큼이나 중요한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흐름 속에 정부 일각에서 3분기를 고비로 경기가 바닥을 쳤으며,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론은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3분기 성장률이 예상을 웃돌기는 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낙관은 이르다. 생산.수출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건설과 소비 덕으로 성장률이 좀 높아진 것이다.

특히 정부가 뭉칫돈을 풀어 교실 증축 등 건설 지출을 늘린 것이 3분기 성장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분석은 세금으로 경기를 지탱하고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성장 견인차인 설비 투자나 수출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둘 다 3분기 중 두자릿수 감소세를 면치 못했고, 대기업들은 내년에 투자를 더 줄일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 경제가 내년에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나 공기업 등 구조조정 과제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것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이다.

성급한 낙관론은 지나친 비관론만큼이나 경제에는 독약이다. 쉬 끓고 쉬 식는 한국 경제의 '냄비 체질'은 성급한 낙관론의 산물이다. 정부.기업.가계 등 경제 주체들이 경각심을 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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