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내 주류 파벌들 고이즈미 개혁에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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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자민당 내 주류 파벌들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에 대한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오고 있다.

지난 주말 고이즈미 총리는 국토교통성 산하의 공기업 중 금융기능을 지닌 주택금융공사를 없애겠다고 공표했다. 자신의 행정개혁 공약에 따라 장기주택대출 업무를 민간은행에 맡기고 정부는 손을 털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가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生) 주택토지조사회장(전 방위청장관)은 "총리는 독재 대통령"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겉으로는 여론수렴 과정 없이 불쑥 발표하는 정책 결정의 형식을 문제삼았지만 실제로는 지지기반인 건설회사들을 감싸기 위해서다. 주택대출이 민영화되면 건설사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기 때문에 이들의 지원을 받는 주류파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주류파들은 또 미국 테러사건 이후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며 적극적인 부양책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개혁을 위해 예산을 줄이려는 고이즈미 내각을 경제난의 주범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류 파벌들이 고이즈미 총리와 사활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맞대결은 아직은 피하는 분위기다. 당장 고이즈미의 뒤를 이을 만한 대안이 없는 데다 자칫 '반개혁 세력'으로 몰려 정치적 입지를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이것이 두려워 고이즈미와 정면승부를 못하고 있다.

자민당 주류파들은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을 주시하고 있다. 11월 중 고이즈미의 지지율은 63% 정도. 집권초의 84%보다는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역대 정권 중 출범 반년 후에도 5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한 사례가 거의 없다.

이를 감안한 듯 고이즈미 총리는 '소신 관철'을 강조하고 있다. 지지율이 다소 하락한 것도 개혁을 더 신속히 추진하라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민당 주류파의 저항이 아직은 대세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주류파가 사안별로 총리를 물고 늘어지면 여당 내 정치공방은 격화될 전망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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