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윤리지침 제정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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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의사협회가 소극적 안락사 허용 등을 담은 의사 윤리지침을 제정한 것은 이런 의료 행위가 필요한데다 실제로 많이 행해지는 현실을 인정하자고 화두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인간 복제와 관련한 생명윤리 논쟁에서 보듯 생명 경시 풍조를 비판하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아 이번 지침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의사협회는 소극적 안락사,낙태나 성 감별의 제한적 허용 등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냈으나 실정법에 저촉돼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또 지침이 낙태나 성 감별을 조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배경=의협은 소극적 안락사나 낙태.성 감별.대리모 등 논란이 되는 행위들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상당 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의사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려 했다.

소극적 안락사가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병원에서 죽는 것을 객사(客死)로 간주하는 사회적 정서 때문이다.

1997년 서울 B병원 의사는 환자 부인의 요구에 따라 중환자를 퇴원시켰으나 환자가 숨지자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이후 의료계에서는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의 퇴원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는 관행이 생겼으므로 이를 개선하자는 의미도 있다.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당 시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으나 이는 사회적으로 자원 낭비며 가족들에게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낙태의 경우 연간 1백50만건 이상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미혼모도 양산되는 실정이다.대리모는 입양을 꺼리는 사회 풍조 때문에 수천만원을 들여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 문제점=의사들이 윤리지침에 따라 의료행위를 하다 실정법에 저촉돼 형사 처벌을 받고 의사 면허까지 취소될 수도 있다.그렇지만 법은 위반했을지 몰라도 의사로서 윤리를 저버린 행위는 아니라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1997년 서울 B병원의 경우 재판부가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살인죄를 적용했다.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는 "의사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판단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명안전윤리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이번 지침이 낙태나 성 감별 행위를 조장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같은 비판을 의식해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등 인위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 찬반 논쟁=고려대 법대 이상돈 교수는 "안락사는 지금도 방관하고 있다"면서 "법제화하되 엄격하게 관리하면 된다"고 찬성 입장에 섰다.

반면 朴사무국장은 "의협 윤리지침이 허용되면 가난한 사람이 대리모가 되거나 소극적 안락사 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반대했다.

특히 기독교계는 생명 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법조계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할지는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고 설사 합의하더라도 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 외국의 사례=네덜란드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을 뿐이다.덴마크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일본은 안락사 대신 존엄사(尊嚴死)라는 말을 사용한다.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중지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갖고 죽음을 맞는다는 의미에서다.소극적 안락사 개념이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은 안락사 반대 여론이 높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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