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길거리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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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시와 각 구청이 최근 길거리에서 음식물을 만드는 행위를 단속하자 떡볶이.튀김.어묵 등이 밀려나고 햄버거.핫도그.샌드위치 등 데워서 바로 먹는 서양식 패스트푸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니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군주였던 빌헬름 4세가 1516년 발동한 '맥주 순수령'이 떠오른다. 맥주에 물.보리.호프 이외의 다른 물질을 일절 쓰지 못하게 한 명령이다. 이 덕분에 독일에서 저질 맥주는 사라지고 순수한 맛과 높은 품질의 제품만 남았다. 이후 독일 맥주는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국가대표 상품이 됐다.

반대로 1916년 일제가 이 땅에 강제했던 '주세령'은 한국 술의 명맥을 끊었다. 집에서 마시려고 담그는 극소량을 제외하고는 가정에서 술을 담그는 것을 금지한 악법이다. 한집당 탁주.약주는 두섬 이하, 소주는 한섬 이하로 양을 제한하고 그 이상을 담그면 주세의 다섯배나 되는 벌금을 물렸다. 집집이 주세를 거둘 수는 없으니 세원 확보가 쉬운 양조장 술을 마시도록 유도해 세금을 더 거두는 게 목적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고 2년이 지난 1918년에 거둔 주세가 경술국치 한해 전인 1909년에 거둔 액수보다 열두배나 많다는 사실이 일제의 의도를 확실히 보여준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전통주를 되살리려고 많은 이들이 노력했으나 부활한 술은 많지 않다.

일본도 침략전쟁 탓에 고유의 술맛을 버렸다.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쌀이 귀해지자 청주를 이른바 삼증주(三增酒)로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 담근 술에 공업적으로 만든 알콜과 물.첨가물 등을 넣어 술의 양을 세배로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자가 된 지금의 일본에서도 시판되는 청주의 상당수는 삼증주라고 하니 한번 잃어버린 맛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독일에선 '임비스'라는 포장마차에서 소시지를 굽거나 삶는 등 조리해서 팔고 있고 일본에서도 라면이나 문어 빵을 만들어 파는 노점이 거리마다 즐비하다. 이들 길거리 음식 중 소시지와 문어 빵 등은 한국의 외식 체인점에서 도입해 인기있는 외국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외여행 때 맛본 사람들이 주고객이라고 한다.

길거리 음식 문화는 한 나라의 개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관광상품이니만큼 법에 따른 규제보다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마침 거리의 포장마차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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