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연금, 자산 극대화가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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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민연금의 주식 및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허용과 관련해 정부부처 간 혼선이 있은 직후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보유하는 주식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공식 견해를 밝혔다. 한편으로는 조만간 고갈될 국민연금을 국민이 거부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진행되고 있어 국민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더 이상의 혼선은 국민 거부심리를 자극할 뿐이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삶은 중요한 것이고, 성공적인 삶은 은퇴 후의 삶에서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에서는 노년의 소비가 은퇴시 수입의 130% 정도를 유지해야 위엄을 지키는 삶을 영유할 수 있다고 본다. 은퇴 전보다 높은 소비가 요구되는 이유는 의료 등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비는 대개 국민연금, 개인연금 및 보험, 저축 및 주식투자, 부동산의 네 개 축으로부터 충당된다. 네 개 축이 균형을 이루는 투자를 해온 일반인의 경우 은퇴시 수입의 33%에 해당하는 부분을 국민연금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관리 목표는 연금 납입자에게 은퇴시 지급 약속에 대해 확신을 주는 일이다. 지급액이 모자라면 세금을 걷어 메우면 된다지만 2030년에 미적립 부채가 1850조원에 달할 연금구조에 대해 신뢰할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보유자산가치가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부채가치보다 많게 유지하거나 재정 범위 내에서 부족분이 유지되는 운용 목표를 달성할 때 연금 납입자들은 확신을 가진다.

이 목표는 부채를 줄이고 자산가치를 늘려야만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보유자산의 투자수익률을 높이고 둘째, 운용주체의 경비를 줄여야 한다. 즉 효율적인 조직을 구축해 운용비를 최소화하고, 고도의 전문 인력으로 하여금 자산을 운용토록 해 위험 대비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운용 주체는 누가 됐던 간에 그 조직이 효율적인가, 투자분야에 전문적인가, 그리고 국민연금의 목표 즉 자산가치 극대화를 위해 외부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우선 자산운용 원칙과 관련해 자산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택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주식과 SOC가 투자 대상에 포함돼야 하는가이다. 공적연금의 투자자산은 크게 국내외 주식.채권.부동산.파생상품으로 나뉜다. 이들에 대한 투자비중은 각각 수익성, 안정성, 인플레이션 헤지, 시장위험 헤지 등이 고루 반영돼 결정된다. 위험관리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주식은 무조건 안 된다''SOC도 무조건 안 된다'는 식보다는 과연 수용할 위험 내에서 관리가 가능하느냐의 관점에서 결정돼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에 끼치는 영향과 관련해 국민연금이 대규모로 주식에 투자할 경우 의결권 행사에 제한을 두느냐다. 재계는 계열금융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연금의 의결권을 인정하면 연금주체를 임명하는 정부가 기업의 경영권, 특히 대표이사 선임이나 투자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문제는 공적연금의 운용자가 정부나 여타 압력으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연금 운용에 있어 독립성.중립성.전문성만 보장된다면 굳이 의결권을 제한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운용자라면 기업가치, 나아가 자기가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자산가치를 낮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외적인 이유로 기업경영권을 넘본다면 이는 기업가 정신을 훼손해 경제재앙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자산가치 극대화 목표 아래 중립적으로 구축돼야 하며, 이런 구조가 정착된다면 의결권 제한에 대한 논쟁은 자연히 사그라질 것이다.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