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대입 기획 양보다 질위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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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뜩이나 날씨도 스산한데 신문마다 여권의 분란에 관한 보도가 넘쳐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일주일이었다. 11월 6일 26면에 '대학생 2명 중 1명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 안택할 것'이란 고대신문의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모국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프랑스(80%).러시아(79%).캐나다(76%)에 비해 매우 낮았다. 우리 대학생들이 모국을 택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가 정치적 타락 때문이라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너무 어렵게 출제된 수능시험을 본 뒤 시험장을 나서는 수험생들과 그 부모들의 심정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어쨌든 시험은 끝났고, 수능관련 기사들이 연이어 게재됐다. 8일 2002대입기획 '힘내라!수험생'은 총 6면에 걸친 묵직한 기획이었다.제목만 뽑아 본다면 '논술.면접 쫄지말고 차분하고 당당하게'(49면),'수능 특정영역 요구 대학 노려볼 만-정기모집 지원전략'(50면), '수능 이후 핵심체크 전문가 좌담' '현대사회 문제점 고전 읽으며 끌어내야-논술대비 이렇게'(52면),'미래를 원한다면 젊음.패기 넘치는 우리 대학 오세요'(53면),'사회 이슈 뽑아 정리해두자-구술.면접대비 이렇게'(54면),'전문대 달라진 입시 어떻게… 일반대와 동시 모집 미리 점검을'(55면) 등이다.

기획의 제목은 '힘내라! 수험생'이었지만 지면은 대부분 정보성 기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53면의 '입시저울로 나만의 능력을 재라'는 성균관대학교 심윤종 총장의 글에서 간신히 '성장''격려''자기성찰' 등의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섯 면에 걸친 기획이라면 입시의 힘겨운 언덕을 넘는 수험생들에게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조언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평균점수가 50점 이상 하락한 결과 수험생들이 당면할 심리적 충격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든가, 이 괴상한 대학입시 과열현상에 대한 총론적 점검 같은 것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힘내라! 수험생'이라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제목과 달리 사람은 없고 입시전쟁만 남은 지면이었다.

9일 20면에 지난 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유학에서 본 페미니즘'이라는 다산기념철학강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유학자 두웨이밍 교수의 이날 강의 요지는 '유교의 인본주의가 성평등을 포함해 인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다'였다.

토론시간에는 "유교적 가족주의가 서구 페미니스트에게는 새로운 경험일 수 있지만 아시아 여성에겐 다른 의미"이며, "남성계보의 연속선상에 있는 유교가 정체성을 유지하며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을까?"란 의문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학자들의 의문에 두웨이밍 교수는 "전근대적 요소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은 후 새로운 탐색을 하는 것이 옳다"며 유교와 페미니즘의 접점찾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기사는 유교라는 전통적 세계관에서 현재와 미래 삶의 원리를 구성하려는 학자와, 여성의 과거.현재.미래 삶을 위한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들이 갑론을박하는 현장의 열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기사제목을 '손내민 유교, 등돌린 페미니즘'이라 했을까□ 오히려 '손내민 페미니즘,변화하는 유교'라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보는 4개국의 시각을 각 나라의 신문 사설로 보여준 '反테러 옳았지만 방법론선 글쎄'(8일 10면)는 미국편향적 보도가 우려되는 분위기에서 돋보였다. '혼전섹스 OK, 이혼도 괜찮아'(9일 2면)란 설문조사 관련기사도 세대별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언론매체가 때론 어느 한 입장을 대변하거나 편견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이 두 기사처럼 보다 넓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될 수도 있다.

이숙경 웹진 줌마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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