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쓴 꼬마일기] 엄마는 왜 동화책만 골라 주실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4면

2001년 11월 9 일

나는 얼마 전까지 매주 한 번씩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엄마와 엄마 학교 앞에서 만나 동사무소에 있는 마을 문고에 간다.

마을 문고에서 동생, 엄마, 내 책을 한 권씩 골라 빌리면 일주일 동안 읽고 다음 주에 다시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어떤 책을 빌리든 상관 없이 동생이나 아빠의 방해 없이 엄마와 단 둘이서 손을 잡고 가는 일부터, 횡단보도의 붕어빵,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빵집 등. 이런 일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데이트를 할 수가 없다. 엄마와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내가 미술 학원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엄마가 퇴근하는 길에 책을 빌려 오신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빌려 오는 책이다. 엄마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신다. 그래서 항상 창작 동화나 명작 동화 같은 걸 빌려 오신다. 나는 그런 것들보다 곤충이나 공룡 아니면 디지몬이나 포켓몬 같은 만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날 생각해 주신다고 빌려오는 책은 공룡이나 곤충이 주인공인 창작동화 같은 거다. 그건 주인공만 사람에서 곤충이나 공룡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늘은 엄마가 마을 문고에 가는 날인데 책을 다 못 읽었다. 거미가 주인공인데 안을 펼쳐보니 나쁜 짓을 하던 거미가 나중에 착하게 되는 뻔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냥 던져두었다가 엄마한테 혼만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이 더 읽기 싫어진다. 왜 엄마는 동화를 읽어야만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하실까□

난 곤충이나 공룡 도감이나 디지몬 도감을 보면서도 곤충이나 공룡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하면서 보는데 말이다.

엄마와 즐거운 데이트에 붕어빵을 포기하는 데다 책까지 별로 재미가 없어서 책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미술학원에도 안 가고 엄마와 함께 가려고 엄마를 기다리다가 오히려 엄마에게 혼만 났다.

언제나 엄마가 날 이해해 주실까□ 이번 주에도 엄마가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 책을 빌려오셨다.

김지희 <서울 용화여고 교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