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집권 연장 마지막 카드 던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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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10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협상을 돕기 위해 총리직과 노동당 당수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임 시점은 “새 당수가 선출될 때”로 미뤘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고든 브라운(59) 영국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총리직과 노동당 당수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당의 집권 연장을 위한 마지막 카드를 던진 것이다. 브라운 총리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공식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자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 협상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닉 클레그(43) 자민당 당수는 총선 전 “노동당과는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지만 민심을 잃은 총리와는 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브라운 총리의 사퇴 의사 표명 뒤 노동당과 자민당의 중진 의원들이 협상을 시작했다.

브라운 총리는 사임 시점을 “새 당수가 선출될 때”로 표현했다. 당수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9월에 실시될 전망이다. 따라서 노동당이 자민당 및 군소정당과 연대해 정권을 유지하면 브라운 총리는 수개월 동안 더 집권한다. 물론 보수당이 자민당 또는 군소 정당과 연대해 의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새 정권이 들어서고, 브라운 총리도 곧바로 총리직을 잃게 된다.

이같이 복잡한 상황은 6일 실시된 총선에서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정권 획득 또는 유지에 필요한 과반 의석(326석)을 얻지 못해 생겨났다. 보수당은 306석의 제1당이 됐으나 과반에는 20석이 못 미쳤다. 노동당은 258석의 제2당으로 전락했다. 자민당은 57석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보수당과 노동당은 경쟁적으로 자민당과의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노동당은 자민당과의 연대에 성공해도 다른 군소 정당 등 지지세력을 끌어들여야 정권을 지킬 수 있다.

보수당과 자민당은 총선 이후 5일간의 협상에서 경제·교육 분야 등 여러 정책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이뤘다. 하지만 자민당이 요구하는 비례대표 선거제 도입은 타결되지 않았다. 보수당은 그 대신 ‘대안 투표제’를 제시하며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했다. 대안 투표는 투표용지에 1순위 지지자와 그에 대한 ‘대안’으로 2순위 지지자를 함께 기표하는 방식이다. 개표 때는 1순위 지지에서 과반인 후보가 당선되지만 과반인 후보가 없으면 2순위 지지까지 포함시켜 다시 집계한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자민당은 수십 석의 의석을 늘릴 수 있다. 최다득점자 1명만을 뽑는 현재의 소선거구제에서는 2위를 차지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동당 역시 ‘대안 투표제’를 자민당에 약속했으나 보수당과 달리 먼저 입법을 하고 차후에 국민투표를 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자민당은 선거구별로 여러 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바꾸고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각 선거구의 당선자를 정하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11일 오후 늦게나 다음날 오전 중에 자민당이 보수·노동당 중 어느 쪽 손을 잡을지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노동당 차기 당수 1순위 45세 밀리반드

데이비드 밀리반드 영국 외무장관(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열린 각료회의를 마치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를 나서고 있다. 왼쪽은 잭 스트로 법무장관이다. 밀리반드 장관은 고든 브라운 총리가 노동당 당수와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유력한 차기 노동당 당수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브라운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차기 노동당 당권 경쟁도 시작됐다. 현지 언론들은 데이비드 밀리반드(45) 외무장관을 당수 후보 1순위로 꼽았다. 해리엇 하먼(59) 하원 원내대표와 앨런 존슨(59) 내무장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으나 이들은 당의 쇄신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44) 당수나 클레그 자민당수와 같은 ‘40대 기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0대 중에는 에드 볼스(43) 초중등교육 장관과 밀리반드 장관의 친동생인 에드 밀리반드(41) 에너지·기후변화 장관도 유력한 주자다.

옥스퍼드 출신인 밀리반드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으로 망명한 폴란드계 유대인 학자 랄프 밀리반드의 아들들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대가인 랄프는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하며 1960년대의 신좌파 운동을 이끌었다. 형 데이비드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 의해 발탁됐고, 동생 에드는 브라운 총리를 보좌해 왔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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