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처형' 한·중 모두 책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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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약사범 피의자 신모씨에 대한 중국 내 처형사건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놓고 한.중 양국이 엇갈린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측은 중국측이 영사관계 빈 협약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으나 중국측은 우리측 항의를 일축하면서 자국(自國)을 비난하지 말라고 역공을 취했다.

한.중 양국은 이 사안을 양국간 감정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냉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사안의 본질은 중국이 1997년 신모씨 등 한국인 피의자 네명을 체포한 뒤 확정판결에 따른 형집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빈 협약상의 의무를 피의자와 한국 정부에 이행했느냐는 데 있다.

빈 협약에 따르면 중국은 첫째, 우리측에 피의자 체포사실을 지체없이 통보하고 피의자에게도 우리 영사와 접촉하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즉각 알려주어야 한다. 둘째, 사망자가 생기면 지체없이 우리측에 통보해야 한다.

중국은 97년 9월 체포사실,99년 1월 1심 재판날짜, 2001년 9월 25일 사형 확정판결 등을 차례로 우리측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우리측은 체포사실의 통보만 있었다고 했다.

중국측은 올해 6월 우리측의 문의에 비공식적으로 정모씨의 수감 중 병사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난 10월 26일에야 우리측의 거듭된 요청에 중국측이 신씨의 사형집행과 정씨의 병사를 공식 통보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양측간에 어느 쪽이든 사실관계에 대한 착오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측이 밝힌 것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중국은 빈 협약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씨가 지난해 11월 병사했는데도 우리측에 지체없이 알리지 않았고,신씨의 사형집행 사실을 1개월 후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감 중인 박모씨가 우리 영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아무런 답변이 없다.

주룽지(朱鎔基)총리도 최근 자국 내 인권침해 문제를 거론한 것을 보면 박씨 주장이 일방적일 수만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국제고문방지협약 상의 의무 문제도 제기된다.

특히 영사면담 요청이 우리측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은 무얼 뜻하는가.중국은 국제법상 의무 위반에 따른 국가책임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외교부는 국민이 외국에서 인신구속을 당해 사형까지 당했는데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언론의 추적으로 문제가 되자 허겁지겁 사실 확인에 나서는가 하면, 현지 영사들은 빈 협약의 내용조차 모르는 한심한 지경이었다.

그러니 자국민에 대한 영사의 적극적인 보호활동을 우리 외교관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외교부는 영사업무를 쇄신해야 한다.

한.중 양국은 연간 2백만명에 육박하는 인적 왕래를 고려,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해 상호 유사사건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중국이 동북 3성을 관할하는 우리의 선양(瀋陽) 영사사무소의 총영사관 승격을 허가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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