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심리학] 5. 리허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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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모차르트.쇼팽에서 안톤 루빈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명피아니스트들의 첫 스승은 대부분 부모나 누이 등 가족이었다. 어릴 땐 곁에서 보살펴주며 연주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연습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주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하면서 보낸다.

음악대학에서 실기 수석을 차지한 21세의 음악도가 어릴 때부터 연습에 투자한 시간을 추산해 보니 1만여 시간이라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연습량이 많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습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어려운 음을 반복해 연주하거나 틀리는 음을 방치하는 것은 좋은 연습방법이 아니다.한 두 개의 음을 계속 연습하면 음악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안되고 틀리게 연주하면 부적절한 패턴의 동작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안되는 부분을 원래 속도보다 느리게 연습한 다음 점점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어려운 곡 하나만 계속 붙들고 늘어지면 연습 효과만 떨어질 뿐이다. 다른 곡을 연습하다가 되돌아오면 의외로 잘 풀린다.

리허설이 너무 완벽해도 실제 연주에서는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최고의 연주는 무대에서 보여줘야 한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연습 자체가 즐겁지만 직업 연주자들은 연주에 더 신경을 쓴다.

리허설은 글자 그대로'다시 듣는다'는 뜻이다. 같은 뜻으로 프랑스에선'반복', 독일에선'실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리허설을 좋아하는 연주자는 없다. 아무리 잘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연습을 재미있고 신명나게 만드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단원들은 말 많은 지휘자를 가장 싫어한다.'입이 아니라 스틱으로 지휘하라'는 말도 있다. 연습 도중 음악을 중단할 때는 분명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동기 부여가 없는 지겨운 반복은 똑같이 무미건조한 음악만 만들 뿐이다.

연습을 좀 늦게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끝나는 시간만큼은 정확해야 한다.예고도 없이 연습 종료시간을 넘기면'무언의 시위'가 벌어진다. 벽시계와 지휘자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사람, 악보를 덮어버리는 사람, 다리를 꼬고 연주하는 사람,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게 연주하는 사람….

지휘자 유진 오먼디는 이렇게 충고한다. "리허설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리허설은 위험하다.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도록 만든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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