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면 심해지는 경제 쏠림현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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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30면

‘어떤 무리에 속한 개인들이 서로 계획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것’.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군집행동(herd behavior)에 대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설명이다. 이러한 군집행동이 경제현상에 나타날 때 특히 ‘쏠림현상’으로 번역한다. 이른바 행태재무학(behavioral finance)의 이론을 빌리자면, 주식시장 버블은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시장을 비정상적으로 과열시킨 사건에 불과하다.

쏠림현상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멀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서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 초 IT 버블,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다양한 형태로 둔갑해 발생하였다. 발생 원인은 한 나라의 경제정책 실패든,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실패든 기본적으로 인간의 탐욕적인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쏠림현상은 투기(speculation)와 일맥상통한다. 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쏠림현상은 경제적 정보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A사 제품을 특별히 선호한다거나, B사 주식만을 사들인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제품이나 투자 종목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preference)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정보가 가격에 이미 반영됐거나 향후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 투자처를 잃은 자금이 단기 부동화돼 MMF 계정으로 몰린다면 시장의 가격 기능에 왜곡이 왔음을 말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정책당국의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쏠림현상은 개개인에게 투자 기회를 주는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

문제는 총체적 행동(collective behavior)의 시각으로 볼 때 나타난다.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나 97년 말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사건들은 쏠림현상으로 초래된 이벤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취한 사적 이득은 얼마 되지 않는 반면 국가가 치른 대가는 가혹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고 친 주체와 뒤치다꺼리 하는 주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 대부분 다르다는 것이다. 못난 아들이 사고 치면 어머니가 뒷수습하는 형국이라 할까. 쏠림현상으로 국가의 부(富)를 말아먹고, 이를 해결하는 수단은 영문 모르는 국민이 내는 돈, 즉 납세자의 돈(taxpayer’s money)이라는 점이다.

쏠림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리스크 관리다. 그런데 말이 쉽지 리스크 관리는 거저 되는 게 아니다. 개인이야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보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경제활동이나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반면 금융회사들은 리스크 관리가 그 업(業)의 핵심 역량이다.

대출 만기의 자동연장(evergreening) 관행만 없애더라도 쏠림현상은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앞장서서 금융시스템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거시경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리스크 관리는 정책당국, 감독당국의 몫이다. 안타까운 것은 금융회사들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은 아직도 돈만 되면 어떤 사업이건 뛰어들고 있다. 최근의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이 그렇다. 고객 목소리는 뒷전이고 사업영역 확장에만 골몰한다. 금융의 국제화도 마찬가지다. 이를 부추기는 정부·언론은 책임질 일 없다. 실패하기라도 하면 주주 가치만 떨어질 뿐이다.

우리는 금융시장에서의 쏠림현상으로 인해 부분적인 부실 요인이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는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 97년 말 85조원에 불과했던 투신사 수신은 ‘바이 코리아’ 열풍에 힘입어 2년 만에 262조원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무차별적 영업 경쟁은 대우사태를 거치면서 2000년 7월 투신사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 2003년 3월의 카드회사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99년 말 17조8000억원에 불과했던 카드채 발행 규모는 3년 후 네 배 이상 커졌고, 이를 재원으로 카드회사들은 묻지 마 카드 발급과 현금서비스 확대를 꾀했다. 많은 국민이 미래의 소득을 담보 잡아 흥청망청 소비한 결과는 카드채 환매사태와 신용불량자 양산이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대내적으로는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가 도사리고 있으며, 대외적으론 국제 공조를 통한 글로벌 불균형(imbalance) 보정에 일조해야 한다. 어느 하나 실패할 경우 또 다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노출된 리스크는 더 이상 심각한 리스크가 아니라는 정도일까.

선거철만 되면 임시변통의 경제정책이 봇물을 이룬다. 저금리 논쟁도 따지고 보면 인기영합주의(populism)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제3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정치적 민주주의 없이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심스러운 작태에 쏠림현상의 부정적 전선(戰線)이 더 이상 넓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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