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카더라' 인용보도 신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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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5일자에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라는 책에 실린 현정권 실세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해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임을 입증하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 '98년 11월 청와대 모 수석 "중앙일보 작살내겠다"'는 취재 없이 발췌와 인용만으로도 기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평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기사였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어김없이 야당 대변인의 성명과 여당의 변명이 이어졌고, 그것이 다시 기삿거리가 됐다. 그래서 26일자에는 '"중앙일보 당장 작살내겠다"'란 사설이 실렸다.

사설에서 자사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보는 관점과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염치없는 일로 보일 경우도 있다.

25일자의 인용문 기사와 26일자의 사설 제목은 다분히 선정적이었다. 책의 전체 맥락에서 떼내어 편집한 인용문은 독자를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보도방식은 게으르며, 비겁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이 책을 사실 보도나 사설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좀더 객관적이고 근거 있는 취재로 뒷받침해야 한다.

공정한 언론이라면 자기 이해를 위해 원래의 사실을 오도하거나 왜곡해선 안된다. 사실을 인용한 외형상의 사실보도에서도 맥락과 입장에 따라 아주 다른 기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 내용 가운데 몇 개 문장을 발췌해 위와 정반대의 논조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DJ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고 검찰 수사를 통해 사주들을 구속시킨 배경에는 '언론 길들이기' 목적이 있었을까? 결론을 얘기하면 아니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DJ는 세무조사를 시작했을까? 정답은 정권과 언론의 '결별'이다. 언론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의혹을 별도의 검증 없이 곧바로 기사화하거나 취재에 바탕을 둔 사실보도보다 인용보도를 자주 하다 보면 신문과 기자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자료를 챙긴 후에 보도하는 게 기자의 일차적인 의무 아닌가. 남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는 '~라 카더라'에 머무르면 수준 높은 기사가 되기 힘들다.

진상을 찾아 밝히려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26일자 사설의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말, 즉 "진정한 언론자유는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로 얻어진다"는 원칙은 아직 멀고 먼 이상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가 아닌 문화관련 기사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한류 뛰어넘는 한국문화에 中 탄성'이란 인터뷰가 그 한 예다. 사람과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인터뷰 안 하기로 이름난 김민기씨를 지면에서 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잘 진행된 인터뷰 하나가 상업적이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한류'라는 상표의 물줄기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날의 '한류 고향 취재온 싱가포르 인기배우'를 접하면 한류에 대한 기자들의 시각도 고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동포들의 죽음을 무릅쓴 한국행과 한국에서의 궁핍한 생활은 이 시대의 또 다른 '한류(寒流)'다. 중국에서 밀입국하던 25명이 선상에서 숨져 수장된 지 두 주일이 지났다. 사건의 끔찍함에 비해 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나 대책은 아주 미약했다.

그런 면에서 기획취재 '중국동포 정책 이대론 안된다'(22~24일)는 그 원인과 해결책을 짚은 책임있는 기획이었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인용기사나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사건 보도는 신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기자의 성실성에 치명타가 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백욱인 서울산업대 교수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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