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 특명 ‘산소 없이 버텨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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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탱크’ 박지성

10일 소집되는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이 ‘산소와의 전쟁’을 치른다.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4층 휴게실은 고지대 적응을 돕는 ‘산소방’으로 조성됐고, 월드컵 개막 직전 해외 훈련 때는 산소 흡입량을 조절할 수 있는 산소마스크를 휴대할 계획이다. NFC 지하 의무실에서는 지난해 11월 구입한 고압 산소텐트를 활용해 부상 선수의 회복을 돕는다.

◆고지대 적응 위해 저산소 환경 조성=일반적으로 ‘산소방’이라고 하면 산소 농도가 높아 쾌적한 곳을 떠올리기 쉽지만 대표팀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다. 대한축구협회 조영증 기술교육국장은 7일 “허정무 팀이 열흘간 NFC에서 머물며 고지대 적응력을 키울 수 있도록 4층 휴게실에 저압·저산소 환경을 만드는 특수시설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 시설은 일정한 공간의 산소량을 줄여주는 네덜란드산 장비다. 이 장치를 설치한 누리텍아이엔씨의 명진호 차장은 “일종의 에어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산소의 양을 단계별로 조절해 해발 2500~3000m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무게가 600㎏에 달해 설치할 때는 대형 크레인까지 동원됐다. 가격은 1억5000만원 정도지만 이 기계를 수입한 누리텍아이엔씨 측은 대표팀의 선전을 위해 설치비 정도만 받고 무상으로 대여했다.

◆산소량 줄이는 산소마스크=NFC에 산소방을 설치하는 것은 고지 적응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국은 6월 17일 아르헨티나와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1753m)에서 B조 2차전을 치르며, 16강에 진출하면 고지대에서 경기할 가능성이 크다. 고지대에서는 공기 밀도가 낮아 평지보다 산소 섭취량이 줄어든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피로 회복 속도가 늦다. 적응하는 데는 보통 3~4주가 걸린다. 대표팀은 고지 적응을 위해 5월 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인근 1200m 고지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하고 6월 5일 남아공 루스텐버그(1250m)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그러나 적응 기간이 충분치 않고, 고지대에서의 훈련이 지나치면 근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조영증 국장은 “높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낮은 곳에서 훈련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산소방 설치로 이것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송준섭 대표팀 주치의는 “하루 한 시간 산소방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 능력이 높아진다는 논문 보고가 있었다. 산소방에서 2500m 이상의 환경을 간접 경험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입을 추진 중인 산소마스크도 저산소 환경 적응을 돕기 위한 것이다. 산소량을 줄여주는 필터가 달린 마스크를 쓰고 생활할 경우 평지에서도 2500m에 있는 것과 같은 몸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치료에는 고압 산소텐트=반대로 부상 치료에는 체내에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텐트를 쓴다. 송 박사는 “저산소 환경은 몸 전체 컨디션 조절에 영향을 주지만 고농도의 산소는 부상 부위에만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부상 부위는 다른 곳보다 20~30% 산소를 더 소모하기 때문에 고압 산소텐트를 이용하면 회복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송 박사는 “산소텐트를 가져가면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된다. 통관 절차 등 행정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가져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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