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한국토지공사 11조2천억 '빚더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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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기업인 한국토지공사가 정부.정치권의 외풍에 시달리며 경영이 헝클어지고 있다.

토공은 땅을 사 개발한 뒤 민간에 다시 공급하는 일을 하는 곳인데 이런 일에 정치논리를 앞세운 외부의 개입이 잇따르는 바람에 계속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부처 장관들이 집단보증까지 하면서 현대건설의 서산 땅을 사라고 강요해 이를 매입했다가 후유증을 앓고 있는 데 이어, 최근엔 분당 백궁.정자지구의 특혜.유착 의혹에휘말렸다.

토공은 특히 외환위기 때 정부의 요청으로 기업들이 갖고 있던 쓸모없는 땅을 대량 사들였다가 이중 절반 이상을 아직 팔지 못한 채 갖고 있으며, 판 땅도 헐값에 매각해 막대한 손실을 입자 최근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2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기업토지관련 업무현황'제목의 토공 자료에 따르면 토공은 1998년 정부의 경제대책조정회의 결정에 따라 국내 기업 보유 토지 3백85만평,2조6천억원어치를 샀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기업들이 은행 빚을 갚는데 쓰도록 토공으로 하여금 매입케 했던 것.

그러나 이때 산 땅의 상당량이 절벽.육교 아래 부지 등 팔기 어려운 토지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토공은 9월 말 현재 이중 절반 이상(55%)인 2백11만평,1조6천9백억원어치를 팔지 못한 채 떠안고 있다. 판 땅도 헐값 세일이 많아 현재 평가손실이 6백67억원에 이른다.

토공은 당시 땅 매입 비용 대부분을 12%의 고금리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했는데 2004년까지 토공은 이자로만 1조5천억원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토공은 이 채권을 만기 5년 짜리로 발행했기 때문에 2003년에는 원리금 합쳐 3조원 가까운 목돈이 일시에 필요하다. 이와 관련, 토공은 최근 건설교통부에 올해분 1천3백억원의 출자를 요청했다.

한편 토공은 현재 이런 저런 이유로 보유 중인 땅 가운데 3년 이상 팔지 못하고 있는 부실 토지가 총 1천3백만평,7조3천4백억원어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97만평)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토공은 이에 따라 6월 말 현재 11조4천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안고 있다.

이태식 한양대 교수는 "토공이 갖고 있는 미분양 산업단지나 기업토지 등은 경제정책과 지역 균형발전 등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부담을 상당부분 떠안고 있는 것"이라며 "효율적인 국토관리 기능을 유지하는 본연의 방향으로 토공의 위상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토공측은 이에 대해 "산업단지.택지 조성, 현대그룹 서산땅 위탁매매 등은 모두 법과 규정에 따라 이행한 것으로서 외압은 없었다"며 "2000년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2위를 하고 1천1백억원의 순익을 내는 등 경영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김시래.김남중.강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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