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D 실험 무기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만 달려가던 미국이 걸림돌이던 러시아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시 제동 페달을 밟았다.

미국은 MD 실험을 연기하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이면서 러시아에 MD구축을 용인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 MD실험 연기=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5일 전날 실시할 예정이었던 MD실험을 이미 취소했으며 다음달 14일로 계획된 실험 등 예정된 두차례의 MD실험을 당분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을 놓고 논의하고 있을 때 이 협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실험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최근 중국 상하이(上海)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ABM협정 개정 문제를 논의한 뒤 "우리는 서로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때 다음달 14일부터 뉴욕.워싱턴과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으로 옮겨가며 사흘 동안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이 사안을 다시 의논키로 했다.

◇ 미국의 의도=미국은 다음달의 미.러 정상회담에서 ABM협정 개정 범위 등의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푸틴 대통령이 최소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MD실험 연기 조치는 ABM협정 때문에 미국의 방위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 문제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것을 국내외에 명확히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이번에 실험을 연기한 것은 MD를 연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러시아에 ABM협정 개정에 동의하라는 압력을 가한 것이라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9.11 테러로 모든 종류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일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이 부각됐다"며 MD 강행 의사를 밝혔다. 테러 사태에 영향받지 않고 MD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 MD실험과 ABM=24일과 다음달 14일 하려던 미국의 MD실험은 이지스함의 레이더와 지상기지의 레이더를 동시에 이용해 모의 탄도미사일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탄도 미사일 요격 실험과 다르다. ABM협정은 지상의 한 곳에서만 레이더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실험이 이뤄질 경우 '해상 레이더 사용'과 '레이더 기지 두개 사용'이 문제가 된다.

미 국방부 일부 관리들은 실험에서는 해상레이더를 추가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방부 법률검토팀은 "명백한 협정위반"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