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쇄신하라는 마지막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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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은 26일 오전 한광옥 대표가 주재하는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열었다. 굳은 얼굴의 최고위원들은 회의 시작 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채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재.보선 완패의 충격을 실감케 했다.

이날 유선호 청와대 정무수석은 김대중 대통령이 전날 밤 투표 결과를 보고받은 자리에서 "열심히 단합하고 민심을 수렴해 잘 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柳수석은 "선거 결과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민주당 내 책임론에 대해서도 "새 지도부에 선거 책임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야당과 선거 후 대화하기로 했다.

야당도 같은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당 최고위원 회의 후 전용학(田溶鶴)대변인은 "선거 민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면서 "구체적인 개혁방향을 정리해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田대변인은 "책임론도 나왔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당내엔 '쇄신만이 살 길'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정말 대폭적인 쇄신이 필요하다"(李在禎의원), "당.정.청의 전면적인 시스템 개편이 절실하다"(金成鎬의원), "미봉책으로 끝나면 다 죽는다"(任鍾晳의원)는 말도 나왔다.

다음은 최고위원 회의 발언록.

▶박상천=민생과 경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대철=민심 이반이 극심하다. 대통령부터 평당원까지 변해야 한다. 쇄신하라는 마지막 경고로 알고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

▶이인제=4년간의 국가 경영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표출이다. 야당과 말싸움이나 네탓 공방만 하면 안된다. 차분하고 의연하게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김원기=선거전략이나 언론과의 갈등이 원인인 것처럼 말하면 안된다.근본적인 문제가 쌓인 결과다. 특정 모임에서 특정 주장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면 당이 대단히 어려워진다.

▶김중권=민심 이반이란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당의 공식 라인이 과연 가동되는지 묻고 싶다. 분파가 왜 이렇게 많은가. 자기 말을 줄이고 자기 생각을 뒤로 하자.

▶정동영=봉합하고 호도하려는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김기재=게임의 흐름이 어려우면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어 게임의 흐름을 바꿔야 했는데 실패했다.인적 쇄신 등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무현=논란만 벌이다 적당히 무마하려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번 결과를 경고로 받아들이면서 뱃심있게 밀고 갔으면 좋겠다.

▶김근태=지금은 행동하고 결단할 때다. 민심 이반이 명백한데, 겸허하고 아프게 수용하겠다는 말만 해서는 수습 불능의 위기를 맞는다. 무엇을 할지 논의하고 행동해야 한다.

▶한화갑=당이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의견을 종합하고 향후 방향을 검토할 기구가 필요하다.

▶한광옥 대표=대안을 마련해 당의 총의를 모아 가시화하도록 하겠다.

김종혁.김정하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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