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김형경 장편소설 '사랑을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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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시인.소설가들로부터 사람 속 넓고 깊은 여자로 통하는 김형경(41)씨가 3년 만에 펴낸 전작 장편소설.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김씨는 『세월』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 등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읽고 그냥 스쳐보낼 수 없는 속 깊은 사람 이야기들로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작가다.

전작소설이란 문예지 등 다른 매체에 선보인 후 고쳐서 펴내지 않고 책으로 직접 독자들을 찾아가는 소설. 때문에 일단의 잘잘못의 평가를 넘어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결의가 배어있는 작품이다.『사랑을…』은 지금 이 세상을 독신으로 똑똑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전문직 독신 여성들의 이야기로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광고나 영화.학술, 특히 정신분석에 관해 일반독자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교양이 가득차 있다.

그러면서 '좋은 아내와 어진 어머니'로 살아가야 한다는 기존의 여성관이 무너진 우리 시대의 독신 여성들은 무엇으로 살고 있나, 아니 전통적 인간의 가치관이 무너진 세상이지만 어째서 우리는 동물 아닌 인간으로 살아낼 수밖에 없는가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광고.건설.출판.법률.여성학 등에 저마다 일가견을 세워가는 30대 여성들이 '오늘의 여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결성한다. 한달에 한번씩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남성 지배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주체적 문제의식을 갖자는 것이다.

이 모임에 참가한 절친한 두 친구, 인혜와 세진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이 작품을 이끈다.

인혜와 세진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현실의 속내를 알기 시작한 대학 시절까지 자취도 함께 할 정도의 절친한 친구. 이후 서로의 상실감을 안고 헤어진 후 이 모임에서 다시 만나 그들의 현재의 삶과 과거를 들추며 여성은, 인간은, 사랑은 무엇인가를 작가는 차근차근, 끈질기게 물고늘어지고 있다.

어려서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에서 자란 세진. 그녀는 지금 여성 건축가로서 사회의 각광을 받고 있다. 남의 도움 받기를 거절하며 홀로, 당차게 살아가는 그녀는 지금 아프다. 병원마다 다녀보며 진찰을 받지만 병명도 없이 아프다. 그래서 신경정신과를 찾아 그 아픔의 뿌리를 찾는다.

생각보다는 실천,독립심 강한 당찬 행동에 이끌려 학창시절 내내 세진에게 기대고 싶었던 인혜. 그녀는 지금 남들을 송두리째 사로잡으려는 광고 문안을 짜내고 있는 카피라이터다. 그녀의 삶 또한 자신을 다 바쳐 모든 남자를 다 껴안다 그들이 절정에 이르면 부담없이 먼저 헤어지는 소비용품 혹은 남자.타인에게는 천사같은 여자다.

자신만이 최고라는 독립심 강한 세진의 페미니즘에 기인한 섹스 불능이라는 불모성의 병, 발기 불능이라도 모든 남자를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건강한 섹스를 회복해주려는 인혜.

한 여성의 두 극단의 심리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은 남성과 여성, 주인과 하인, 사랑과 증오, 영원과 순간을 구분하며 적대적.극단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껴안으라는 것이다. 나의 여성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하려는 여성뿐 아니라 그런 여성들을 반쪽으로 삼아 연애하고 미워하는 남성들도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이경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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