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트] 김정수 드라마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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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며, 사극 열풍에도 현대극의 자존심을 지켰던 MBC 주말극 '그 여자네 집'이 지난 21일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지난 19일 밤 여의도의 한 식당.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쫑파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더 해도 좋았을 텐데 50회로 칼같이 끝내다니…"였다. 이에 대해 작가 김정수(54.사진)씨는 "박수칠 때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다운 대답이었다.

드라마 성공의 일등 공신인 김씨는 '전원일기'의 작가로 기억된다. 1981년부터 12년간 대본을 집필하면서 '전원일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김씨의 관심은 농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네 가족 그 자체에 있었다.'엄마의 바다''그대 그리고 나'도 가족에 대한 김씨의 열정이 묻어난 작품들이다.

지난해 10월부터 김씨는 '이혼'이라는 화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특히 소위 '6호 이혼'(외도.폭력 등 전통적 이혼사유 대신 대화 단절, 애정 상실 등의 기타 사유로 인한 이혼)이 급증하는 현실은 젊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주인공 태주(차인표)와 영욱(김남주)의 사랑이다.

태주와 영욱은 20대 후반의 솔직한 사랑을 상징한다. 김씨는 두 사람의 혼전 성관계까지 과감하게 그려 내숭의 틀을 던져버렸다. 이 때문에 어머니들이 "정말 요즘 애들이 그렇게 지내느냐"며 자기 딸 단속에 나섰다는 웃지 못할 후문도 있다. 이들의 직설적인 사랑 표현은 결국 이혼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작가는 재결합이라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가정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다.

그런가 하면 그는 고전적인 사랑도 그렸다. 준희(이서진)와 영채(김현주)는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답지 않게 동화 같은 사랑으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극 중 두 사람은 손도 거의 안 잡고, 키스도 딱 한번 했다. 그 키스마저 방학을 맞은 학생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 드라마를 통해 젊은이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쳤다는 평을 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닥치는대로 책과 잡지를 뒤지고, 청년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에 "어머 정말 내 얘기야"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의 성격상 못다한 이야기도 있다.

우선 영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해 고민하다가 정신병에 걸리는 스토리를 구상했다가 빼버렸다. 예전에 한 드라마에서 "내가 죽으면 너의 수호천사가 돼 줄게"라는 대사를 썼는데, 어떤 투신자살 사건에서 '수호천사'란 단어가 나온 걸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혼여성의 남자친구 문제도 정면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가족 시청 시간대라는 점을 감안해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히트작을 낸 만큼 여러 곳에서 집필 요청이 쇄도할 터이다. 그러나 김씨는 "조그마한 옹달샘이 채워지기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며 힘든 과정을 거친 만큼 휴식 외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여자네 집'을 쓰는 동안 그는 몇번이나 목욕탕에 물을 크게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런 열정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기에 종영 후에도 시청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김정수식 사랑법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이상복,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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