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츠 클럽 싱글모임은 '여인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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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10월. 말레이시아 콴탄 공항에서 버스로 한시간 쯤 떨어진 해변 마을. 다국적 리조트인 클럽메드 채러팅 빌리지에서 싱글들의 환상적인 파티가 벌어졌다.

엔지니어.프로그래머.의사.웹마스터.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내로라 하는 직업을 가진 20~30대 미혼 남녀들. 늦은 휴가를 즐기러 왔다. 해변에서는 윈드 서핑.카약, 빌리지 안에서는 수구.양궁.암벽 타기.서커스.살사 댄스까지 다양한 레포츠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 모든 레포츠들을 즐기려 줄을 선 사람들은 남자 보다는 여자들이 주류다. 3명이 타는 카약에는 여자들만 3명이 타거나 남자는 겨우 한명 정도 껴 있다. 살사 댄스 시간에는 남자 파트너가 모자라 여자들끼리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싱글 파티에 참가한 한국팀은 남자 13명에 여자 30명. 남녀 비율이 1:2를 넘는다.

왜 싱글 파티엔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많을까.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4박5일간 열린 클럽 메드의 제4차 알쿠디아 해변 싱글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

Q:왜 여자가 남자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을까요□

女:글쎄요…남자들은 혼자 다니는 걸 별로 안좋아하잖아요□ 이젠 여자들이 새로운 일과 사람을 만나는데는 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것 같아요.

男:여기 오려면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남자들은 술 마시느라 돈을 못 모아요. 여자들은 휴가를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죠.

女:여기서 멋지게 사는 언니,동생들을 만나보고 힘을 얻었어요.싱글 파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고급 인력들이라 발 넓히기에 참 좋은 기회라 생각해요.

男:남자들은 새로운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학연.지연으로 엮인 사람들이나 회사 동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데 신경을 더 쓰는 편이죠.

클럽메드 한경아 마케팅부장은 "남성들은 여가 시간을 주로 술과 함께 보내기 때문인지 싱글 파티엔 항상 여성들이 몰린다"며 "건전한 레포츠에 도전하는 남성들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싱글 모임에 여자가 넘치는 현상은 이곳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 강남 역삼동의 '헬로 라틴'. 40세 미만의 싱글들만 입장할 수 있는 라틴 댄스 클럽이다. 저녁마다 스윙.살사 등 라틴 댄스 파티가 펼쳐진다. 이곳에서도 여자들끼리 손을 잡고 스텝을 밟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매주 3일 이상은 이곳에서 스윙 댄스를 추던 이민영(24.여.환경컨설턴트)씨. 이씨는 최근 채식과 명상에 입문했다.

살사 댄스를 배우려고 관련 동호회도 여러곳 가입했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러 간다. 한두달에 한번 쯤은 혼자 인도 등으로 배낭여행을 다니며 알게된 사람들을 만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행.댄스.명상은 물론 인터넷 동호회까지 어떤 모임을 가든 항상 여자가 많아요. 모임 안에서도 여자들이 남자에게 춤을 청하는 등 더 적극적이죠."

여성심리학회 회장 김태련 교수(이화여대 심리학과)는 이런 현상은 여성이 독립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구속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을 선택하고 있어요. 자기 일은 자기가 관리하는 거지요. 반대로 남성들은 부모들의 과보호 속에서 오히려 더 의존적이고 예속적으로 자라났어요. 학연이나 지연에 의존하는 것도 독립적이지 못한 성향 때문이예요. 여성들은 학연.지연의 틀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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