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경제 다시 먹구름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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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8월 국제통화기금(IMF)의 80억달러 추가 지원 약속으로 국가 부도(디폴트)위기를 벗어나는가 싶었던 아르헨티나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9.11 테러사태로 미국 경제의 부진이 뚜렷해지고, 그 영향으로 아르헨티나를 보는 해외투자자들의 눈길이 싸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는 최근 10년간 최저치로 주저앉는 등 금융시장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유력한 신용평가회사인 미국의 S&P가 지난 9일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B-'에서 'CCC+'으로 낮춘 것을 비롯해 세계 3대 신용평가 회사들이 잇따라 국가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실시된 총선에선 정부의 긴축재정을 비판해온 야당인 정의당(일명 페론당)이 승리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터키가 IMF로부터 "경제개혁에 진전이 있다"는 칭찬을 받으며, 그런 대로 위기를 관리해 나가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된다.

◇ 테러 직격탄 맞아=지난 9월 10일 287.21을 기록했던 아르헨티나의 종합주가지수는 테러 직후부터 폭락을 거듭, 이달 초엔 200선까지 위협받았다. 최근에 약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그 부정적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여기에 경제난으로 세금이 덜 걷혀 재정적자 축소 노력도 난감해지고 있다. 올 3분기에 거둔 세금은 전년 동기 대비 9%나 줄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부채는 1천3백2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한푼이라도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금 1백60억달러 규모의 국채 금리를 낮추기 위해 연.기금 및 지방은행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3년간 임금은 20% 가량 떨어졌는데도 실업률은 여전히 17%선일 정도로 경제가 안좋다.

◇ 정치상황도 불안=총선에서 정의당이 약진함으로써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과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이 주도하는 긴축 재정정책은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21일엔 사회개발장관이 사회복지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카발로 장관은 상황이 더 나빠져 예금인출 사태 등이 벌어지면 고정환율제 포기를 의미하는 페소화 평가절하 대신 미국 달러화 공용화 정책(달러라이제이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는 은행 예금 가운데 72%가 달러화인데다 페소화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달러 공용화를 채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프리 삭스 미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아르헨티나는 페소화 평가절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도 미 달러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당 등에서는 이럴 경우 아르헨티나 경제의 미국 예속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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