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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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00. 무서운 방장스님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의 방장이 될 당시 세수(世壽.세속의 나이)는 57세. 괄괄할 성정에 총림을 한국불교의 기본도량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욕까지 있었으니 큰스님의 기대에 부응해야할 선방(禪房) 수좌(首座.참선에 전념하는 승려)들의 일과가 편할 수가 없었다.

성철 스님은 무시로 선방을 드나들었다. 해인사 큰절의 법당인 대적광전 동쪽편에 방장실과 선방이 나란히 있기에 수좌들은 성철 스님의 기습방문에 속수무책,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성철 스님이 선방에 들이닥칠 때는 늘 한 손에 죽비를 들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상판(윗자리).하판(아랫자리) 구분할 것 없이 조는 사람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졸지 말고 밥값 내놔라 이놈아!"

선방 스님이 졸면서 참선을 않는다면 절에서 공짜로 주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꾸짖음이다. 당시 선방에서 수행했던 스님들은 한결같이 "그때는 방장스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지금 돌이켜보니 그 경책(죽비를 후려치며 꾸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자비의 매질인지…"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당시 성철 스님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

"사람 못된 것이 중 되고, 중 못된 것이 선원 수좌 되고, 수좌 못된 것이 도인 되는 거라."

선방 수좌들은 세속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못된 인간들이란 얘기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못된 인간이 도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철 스님이 수좌들의 수행을 돕는 소임자(절에서 행정적인 직책을 맡은 스님)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다.

"주지 이하 소임 사는 너거들은 수좌들이 밤에 똥을 싸놓고 뒹굴어도 허물 잡지 말고 외호(外護)나 잘 해야 된다이!"

성철 스님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 "못된 인간"이라고 자처했다. 그리고 '도인(道人.깨달은 자)'과 '깨달음'의 뜻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성철 스님의 법문 중 일부.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고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나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구니이며 도적이다.

중상과 모략 등 온갖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헐뜯고 욕하고 괄시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인은 없으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렵거늘 하물며 원한을 품는단 말인가?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니 어찌 무서워하지 않으며, 천대와 모욕처럼 나를 굳세게 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랴? 항상 남이 나를 해치고 욕할수록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나는 그 사람을 더욱더 존경하며 도와야 한다.이것이 공부인(수행자)의 진실한 방편이다."

세속의 기준을 뒤집는 역설들이다. 성철 스님이 이 대목에서 비유하는 것은 '최잔고목',즉 '썩고 부러지고 마른 나무 막대기'다.

"부러지고 썩어 쓸데없는 나무 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땔나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 땔 물건도 못 되는 나무 막대기는 천지간에 어디 한 곳 쓸 곳이 없는, 아주 못쓰는 물건이다. 이러한 물건이 되지 않으면 공부인이 되지 못한다.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해 버리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가혹하고 철저한 기준이다. 쓸모없는 인간이 도인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스스로 철저하게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도인이 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세속의 삶과는 다른, 그렇게 가혹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포기하는 삶이어야 도(道.깨달음),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수좌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해 스스로 최잔고목이고자 한 셈이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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