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평화적 해결 한·미 정상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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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오후 칠레 산티아고 하얏트 호텔에서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산티아고=최정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전했다.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한국에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 부시 대통령 2기에서 미국의 정책 우선 순위 1번으로 삼아 한.미 간 긴밀한 협의와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평화적.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한반도와 6자회담 참가국 및 전 세계 국민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절대적으로 동의한다"면서 "미국으로서는 이란.이라크, 달러 문제 등이 있지만 한반도 문제를 중대한(vital) 이슈로 삼겠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회담에서 "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가지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노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LA) 발언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상당히 단순화돼 있는 것 같다"며 "평화적인 해결,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 아니면 혹시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 등 두 가지 단순한 내용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푼다는 확실한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고 반 장관은 전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지난 12일 LA 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미 양국에서 북한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론 6자회담의 원만한 진전을 위해 대화 상대인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거나 한반도 안보상황을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비치는 발언이 자제돼야 한다"고 연설 취지를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반 장관은 밝혔다.

한편 미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20일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정상과 연쇄회담을 열고 이들 국가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종식을 위해 공통된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산티아고=최훈 기자,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choiho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뉴스분석] 북한 자극 말자는 노 대통령 배짱 외교…부시, 일단은 공감

북한의 핵무기는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LA 선언'은 대담한 노무현식 벼랑 끝 전술이었다. 그것은 북한 핵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의 반응이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노 대통령의 그런 배짱 외교가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노.부시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LA 발언은 그냥 넘어갔다. 2001년 5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부시가 김정일에 대한 회의론(懷疑論)으로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북한이 6자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이상 회담 진전을 위해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자고 말하고 부시는 "전적인 이해"를 나타냈다. 그것은 두 대통령이 북한을 자극하는 말을 삼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는 의미다. 노 대통령의 LA 발언이 부시 2기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선회하는 것을 막자는 계산에서 나왔다면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피하자는 합의는 의미 있는 성과다. 한국이 미국 측에 북핵에 관해 제발 신축적이고 창의성 있는 태도를 취하라고 촉구한 것도 결과가 기대된다. 창의적인 것은 대담한(bold) 것을 의미한다.

부시도 자기 몫을 챙겼다. 그는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에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띄웠다. 하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북핵을 가장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다뤘으니 북한이 성의를 가지고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강력한 암시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지금부터는 북핵에 관한 6자회담 참가국의 통일된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통고다. 동시에 그것은 노 대통령에게는 LA 발언 같은 것은 한번으로 끝내 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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