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패트롤] 대기업 규제 완화안 부처간 이견 최종조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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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이 23일이다. 나라 안팎 경제 기상도도 쌀쌀해진 날씨만큼 움츠러들고 있다.

테러 대전에 탄저병 공포는 소비심리를 가라앉히고 세계경기 회복이 늦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여파로 수출이 줄어들자 정부는 내수로 군불을 지피려 하고 있다. 초저금리 속에서 갈 곳을 몰라 하는 시중 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상품도 내놓았다.

22일부터 장기주식저축에 가입할 수 있다. 처음 며칠 동안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증권계가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상품은 어지간해선 이익을 내기 어렵게 돼 있다. 가입금액의 7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면서, 일단 사면 석달 이상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걸핏하면 요동치는데 제때 팔지 못하면 눈 뜨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우리 증시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인 상품이라서 그다지 많은 자금이 몰리지 않으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봉급생활자든 자영업자든 소득이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므로 연말로 갈수록 세금 공제를 받기 위한 가입이 늘어나리란 기대를 안고 있다.

시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 문제다. 3분기 매출이 반 토막이 난 가운데 손실은 두배로 불어났다. 반도체 시세가 원가를 밑돌고 빚에 대한 이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보다 형편이 낫다는 분석이다.

회사측은 반도체 일부 설비를 중국 등에 팔아 1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등 추가 자구책을 내놓았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움직이고 있다. 기존 대출이 많아 채권단회의에서 발언권이 센 데 신규 자금 지원을 반대하는 쪽에 서 있는 주택.국민은행의 향배가 관심거리다.

30대 그룹 지정과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손질하는 기업규제 완화 방안이 이번주 안에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식으로 결정되든 공정거래법을 바꿔야 하므로 서둘러야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 2차 추경 편성과 서비스업 육성을 위한 1조원 지원 등 내수진작 대책과 맞물려야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는 정부가 부처간 이견 조정에 나설 것이다.

11월 1일 합병은행으로 공식 출범하는 국민.주택은행이 이번주에 본부 부서장 인사를 한다. 지점의 업무 통합은 내년 초 전산망 일원화 이후로 미룬 채 본부부터 섞기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은행의 두뇌가 어떤 인물로 채워질지, 반발은 없을지 합병은행의 앞날을 예고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쌀 농사는 11년 만에 대풍이라지만 농민들은 우울하다. 재고는 더 쌓이고 쌀값이 떨어질 판이기 때문이다. 한우는 4백만원을 넘어서 사상 최고를 기록했는데 돼지값은 급락하고 있다. 어물쩍대며 일단 고비를 넘기고 보자는 정책이 낳은 후유증들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이 제 기능을 하며, 투명한 제도 아래서 경쟁하도록 해야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경제가 건강해진다.

양재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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