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마구잡이 용도 변경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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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궁.정자지구의 용도변경 특혜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산.평촌.중동.산본 등 다른 수도권 신도시들에서도 마구잡이로 용도변경이 추진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따라 입주 10년이 지난 지금 수도권 5개 신도시의 당초 업무용지 및 학교부지 등이 아파트단지나 상업지역으로 바뀌는 등 계획도시의 본래 취지를 무색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한 토지공사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들이 개발이익과 세수확보에만 급급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 마구잡이 용도변경=19일 오후 2시 최근 문제가 된 분당 백궁.정자지구 주상복합아파트 공사현장. 골리앗 같은 수십개의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듯 서 있다. 8만6천여평의 이 부지엔 2004년까지 초고층(38층)아파트 6천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이 땅은 당초 분당의 자족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토지공사가 업무.상업용지로 개발한 곳이다.5년째 땅이 팔리지 않고 나대지 상태로 남아 있자 고민하던 토지공사가 1998년 성남시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제안,시가 지난해 5월 용도변경을 해준 결과다.

공사현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정자동 상록마을 임광아파트에 사는 주부 金모(40)씨는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청계산 자락의 풍광을 더이상 바라볼 수 없게 됐다"며 "저층의 업무용 건물이 들어설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주민들의 조망권 침해는 물론 최악의 교통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시는 또 분당 이매동으로 이전하는 야탑동 391 일대 송림중.고교 부지 7천4백여평에 대해서도 학교용지를 일반주거지역으로 바꿔 15층짜리 아파트 2백70가구의 건축허가를 지난해 12월 내줬다.

일산도 사정은 마찬가지. 토지공사는 무리하게 백석동 1241 일대 3만3천5백평을 출판문화단지로 지정했다가 분양되지 않자 민간건설업체에 매각했고,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고양시는 이곳에 최고 35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2천5백가구를 지을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 부천 중동 신도시에서는 일반상업지역을 주상복합건물 신축이 가능한 특별계획구역으로,평촌 신도시는 여객자동차터미널 시설을 근린.업무시설로 용도를 바꾸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서울대 안건혁(安建爀)교수는 "신도시의 용도변경은 원래의 도시계획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기반시설 부족으로 인한 교통.교육.환경 문제 등 주민 전체의 주거환경을 침해하는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빗나간 도시계획=신도시에는 아직도 팔리지 않은 땅이 많다. 대부분 업무.상업용지로 전문가들은 업무.상업용지 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잡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신도시와 같은 계획도시는 업무.상업용지가 전체 면적의 5%를 넘지 않는 것이 도시계획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분당은 8.3%,일산은 7.8%,중동은 6.4%나 된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분양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업무.상업 용지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완벽한 도시계획보다는 땅을 파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나마 분양 촉진보다는 오히려 미분양이라는 짐만 떠안았다.

일산 신도시의 경우 3만5천평이 아직 나대지 상태로 있다. 분당은 백궁.정자지구 8만6천평을 용도변경하고 나서도 3만5천평이 그대로 있다. 평촌은 3천3백평이 업무.상업용지로 묶여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사회문제화했던 일산 주택가 인근 러브호텔도 잘못된 도시계획이 빚어낸 후유증으로 꼽힌다.

대화동.백석동의 경우 상업지역과 주택지역을 불과 왕복 4차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배치하는 바람에 아파트와 러브호텔.나이트 클럽.룸살롱 등이 마주보게 건설돼 주민들의 주거.교육환경을 크게 해쳤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李相大)박사는 "계획 인구에 맞춰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조성한 신도시의 잦은 용도변경이 도시기능 유지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헌.전익진.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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