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회장 찾기 어렵네,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후임 회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총은 지난 2월 이수영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 이후 후임을 찾지 못하다 3일 이희범 STX 에너지·중공업 총괄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전격 추대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즉각 수락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경총 측은 “회장 추대위에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한 일이다. 재계 원로들을 통해 간곡하게 이 회장을 설득해 보겠다”고 반응했다.

경총이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이 자리를 맡으려는 기업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수영 회장의 사퇴 발표 직후 회장 추대위(위원장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를 구성해 여러 기업인들과 접촉했으나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경총 회장은 노사협상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노조 측과 각을 세워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다. 게다가 올 7월 타임오프제(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도입과 2011년 복수노조 허용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기업 간 입장이 엇갈린 끝에 지난해 말 현대·기아차그룹이 경총에서 탈퇴하는 등 위상이 흔들린 것도 경총 회장 자리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경총 회장 구인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후임이 마땅치 않아 한번 경총 회장을 맡으면 ‘장수’하는 게 그간의 관행이었다. 경총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독립해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경제단체로 출범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역대 회장은 4명뿐. 초대 회장인 김용주 전 전방 회장이 1982년까지 12년 재임했고, 2대 회장인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97년까지 15년간 자리를 지켰다. 3대 회장은 다시 김용주 초대 회장의 아들인 김창성 회장이 넘겨받았고, 김 회장이 2004년 이수영 OCI 회장에게 바통을 물려줬다.

재계 관계자는 “경총 회장은 노사 현안을 해결하는 동시에 기업들의 서로 다른 입장까지 두루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라며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경총 회장의 공석으로 노사 관계에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