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서 조상씨 개인전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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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검고 깊은 공간속을 가로지르거나 흘러내리는 흰 빛. 특이한 기운을 담은 빛은 처음으로 우주를 탄생케한 물리학의 빅뱅(대폭발)이론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때로는 태초의 혼돈을 관조하는 명상적 사유의 힘을 느끼게도 한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상(44)전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성이 결합된 새로운 세계"(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를 보여준다(28일까지).

홍익대 동양화과와 미국 뉴욕대 대학원(회화전공) 출신으로 뉴욕 조지 빌리즈 갤러리 전속작가인 조씨가 4년 만에 여는 국내 개인전이다.

지난 6개월간 한국에 머물면서 만든 대작을 주종으로 한 30여점이 1,2층 전시장을 모두 메우고 있다. 수묵이나 염료를 천에 스며들게 하는 선염법과 아크릴 물감을 함께 사용해 짙고 어두운 톤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그의 추상화는 대자연의 웅혼한 기운, 우주공간의 물리적 에너지 등을 함께 담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두루 배운 그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은 2층 전시실 왼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6.5m 길이의 '무제'.

검고 어둡게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바탕색은 우주 전체의 어두움과 무한함을 연상시킨다. 아래쪽엔 낮게 깔리는 희뿌연한 연기같은 흐름이 보인다. 구름이나 산의 형상같기도 하고 다른 은하계 먼 별무리의 사진을 차용한 것 같기도 하다. 왼쪽 귀퉁이에 벽화처럼 벗겨진 자국은 이것이 헤아릴 수 없는 오랜시간을 겪어온 현상임을 드러낸다. 오른쪽의 수직기둥은 로고스의 신전을 버텨온 물리법칙의 힘을, 왼쪽의 희뿌연한 수직형상은 이성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직관과 명상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세계 전체를 정신과 물질이 통합된 하나로 보는 신과학에 관심이 많다"며 "내가 꿈꾸는 정신적 차원을 사물의 이치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그 발견을 고도의 정신성으로 조형화하고 싶다"고 작업의 목표를 설명했다.

02-720-5114.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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