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사변 주인공 장쉐량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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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36년 12월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를 체포, 일본 침략군에 맞서기 위해 공산당과 합작토록 요구해 관철시킨 시안(西安)사건의 주인공 장쉐량(張學良)이 지난 14일 오후8시(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1백1세.

27년 이후 10년간 내전을 벌이던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시안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國共)합작을 해 항일전에 나섰다. 공산당은 국민당에 궤멸될 위기에서 벗어나 재기의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지만 국민당 일각에선 공산당의 통일전선 전술에 넘어가 49년 본토를 잃고 대만으로 패퇴한 계기가 됐다는 상반된 평가를 하고 있다.

張은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맏아들로 랴오닝(遼寧)성에서 태어났으며 19세에 군대에 들어갔다. 28년 아버지가 일본군에 의한 열차폭발로 숨지자 그 자리를 물려받았으나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자 중국 북서부 산시성(陝西省)으로 이동했다.

35년 국민당 장제스의 지시에 따라 국부군이 산시성 옌안(延安)을 근거지로 하던 공산당을 토벌하는 데 동원되자 張은 우선 일본 침략자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안 사건을 일으켰다.

張은 사건 후 장제스와 난징까지 동행했으나 곧 가택연금을 당했고 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주할 때 끌려가 타이베이(臺北)의 자택에 연금됐다.

국민당 정부는 장제스가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77년 5월에야 연금을 해제했으며 93년 12월 미국에 갈 수 있게 허용했다. 張은 95년 이후 하와이에서 노후를 보냈으며 지난해 4월 1백수 때는 중국과 대만에서 축전을 받았다.부인 자오이디(趙一荻)는 지난해 6월 88세로 숨졌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5일 조전을 보내 애도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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