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통의 명가 '호산죽염된장'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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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청안면 질마재 고개 국도변. '호산죽염된장'이라는 간판을 내건 한옥이 있다. 식당인가? 된장파는 덴가? 어리둥절하다. 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다.

13년째 전통 방식의 된장을 고집하며 농사부터 판매까지 손수 하고 있는 호산식품(www.ihosan.com) 이정임(51) 대표가 2000년 지은 식당이다. 서까래가 시원스러운 천장에 흙벽집이라선지 된장냄새가 더욱 구수하다. 메뉴판도 없다. "한정식 5천원, 된장양념삼겹살+한정식 만원" 하는 식으로 손으로 써 벽에 붙인 종이가 전부다.

직접 담가 판매도 하는 장아찌류, 씨감자 조림 등 21가지 반찬에 이 집 명물 된장얌념삼겹살과 된장찌게. 떡벌어진 시골밥상을 받았다.

▶ 호산죽염된장 상차림

"김치가 3년 됐어요"라는 벽에 붙인 종이를 보며 배추김치를 입에 넣었다. 칼칼한 김장김치맛이다.

밥을 먹고 있노라니 주인 아주머니가 밥상머리에 앉아 "우리가 직접 2년 농사지은 콩으로 죽염넣고 담가 2년 숙성시킨 된장이에요", "이거 다 유기농으로 기른 채소에요. 마음놓고 싸잡수세요"라고 조곤조곤 설명한다. 알고 먹으니 더 예사롭지 않다. 3년 묵은 김치를 헹궈 들기름으로 지진 밑반찬 등 손이 안 간 것이 없다. "저희집 음식은 죽염간장으로 간을 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하나하나 직접 길러 숙성시켰다는 밑반찬으로 차린 1만원 내고 나오기 미안할 정도의 푸짐한 한 상. 게다가 된장 사가는 손님들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준단다.

"잘 지은 여관 2~3만원이면 하루 잘 수 있는데 여기 만원을 받겠어? 2만원을 받겠어? 된장 사러 오신 분들 그냥 주무시고 가시라고."

이정임 대표의 말이다. 그러나 진짜 포부는 따로 있었다.

"잘사나 못사나 된장은 누구나 다 먹어. 그런데도 가정에 된장이란 문화가 없어. 젊은이나 어린이들이 앞으로 된장 담그는 문화를 모를지도 몰라."

▶ 호산죽염된장 식당

그는 5~30평형 방 11개 짜리 팬션을 연내 완공할 계획이다. 200여명이 한 번에 묵을 수 있다.

"우리는 외국 음식들 많이 먹지만, 우리 음식은 세계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가까운 일본에는 청국장, 두부, 김치 같은 건 승부를 걸 만해. 5만엔으로 김치 사면 조금밖에 못 사겠지만 그 돈 들고 우리나라 오면 여행하고 김치도 살 수 있지. 말하자면 여긴 된장 체험장이야."

손님들에게만 '퍼주는' 게 아니다.

이 대표는 이날도 지역 양로원 후원회에 다녀오느라 뒤늦게 나타났다.

"좋은 일 하시네요."

입에 발린 소리를 건네봤다.

"우리도 없이 살아왔으니 없는 사람 생각할 뿐이지."

된장, 청국장 등 1톤 분량 장류를 연 1000명 가까운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준단다.

원래 그는 부천의 식품유통업체 사장이었다. 대형 수퍼가 드믈던 시절, 공장에 부식을 납품하던 회사였다. 부도가 나 단돈 7만원 들고 야반도주했다. 날품팔이를 하며 각지를 전전하다 절에서 전통 방식으로 된장 담그는 것을 배웠다.

"망하려니 하루 아침이더라.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 그래서 베풀며 살아야 해. 하루 한 번씩 좋은일 하자는 게 내 신조에요."

▶ 이정임 대표부부

유리를 댄 한옥 문창살 너머 뒤뜰에는 자식같은 장독들이 즐비하다. 1000개 가량이던 것이 이제 4000여개란다. 여러 해 숙성시킨 후 시중에 내놓기 때문이다.

"저 항아리들 다 돈인데 돈 묵히는 셈이라 손해일 수도 있지만, 장도 묵어야 제맛 아닌가."

고집이 만만치 않다.

"밥장사 할 망정 바른 소리는 해. 행정수도 붐 여기까지 불었어. 투기하러 와 밥먹는 사람들한테는 농촌 황폐화시키지 말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입바른 소리도 해."

그는 욕심도 많다. 장래 희망은 고아원 짓는 것.

"양로원은 자식들도 있고 해서 후원자들 많지만 버려진 아이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괴산=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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