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성 없는 미니신도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에게 '도시'라는 말은 생겨나면서부터 도읍(都邑), 곧 정치 또는 행정의 중심지라는 뜻과 시장(市場), 곧 경제의 중심지라는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라는 개념 속에서 경제적 의미는 차츰 퇴색하고 정치적.행정적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기에 이르렀다.

*** 선후 뒤바뀐 개발 관련法

경제적인 조건을 두루 갖추지 못한 채 새로 건설된 도시가 도시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야기하는 여러가지 문제는 일산.분당.평촌.중동.산본 등 수도권 5개 신도시의 경우로서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서울의 인구가 대량 유입돼 경기도의 개발압력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거공간과 일터공간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분리됨으로써 수도권 출.퇴근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지난달 건설교통부는 파주 운정, 용인의 영신 및 서천, 양주 고읍, 오산 세교, 화성의 청계, 동지, 목리지구 등 수도권 8개 지역에 미니신도시 건설을 위해 택지개발예정지구를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신도시 건설계획에서 지적돼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도시개발법이 아닌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시행된다는 제도상의 문제다. 아무리 '미니'라지만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있어 도지사가 권한을 갖고 있는 도시개발법은 도외시하고 건교부의 택지개발촉진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선후가 뒤바뀐 느낌이다.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한 신도시개발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그 첫째가 지역여건을 무시한 주택공급 위주의 개발방식이라는 점이다.

택지개발촉진법은 도시에서 특히 부족한 주거공간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에 의한 개발은 당연히 양 위주의 주택단지 건설을 위한 개발사업이므로 다른 기능은 등한시 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미니신도시 건설이 예정돼 있는 이들 지역은 이미 과도한 주택건설사업에 따른 난(亂)개발 문제, 그리고 기반시설 및 공공시설의 부족으로 인한 자족성 결여의 문제가 심각하게 재기돼온 곳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지역에 추가로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한다면 불 난 곳에 기름을 퍼붓는 격이 아닐 수 없지 않겠는가.

둘째 문제점은 수도권 공간계획과의 시대적 상충성 문제다. 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전체의 공간계획과 조화를 이뤄야 하므로 주변상황과 연계된 관련계획의 치밀한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수도권의 일련의 계획을 검토해보면 수도권의 공간구조를 단핵 중심에서 다핵 중심으로 개편하는 가족군집 도시체계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한 개발방식은 생산기능은 수도권 중앙에 그대로 둔 채로 주거기능만 외곽으로 이전하자는 단핵 중심이론으로서, 현재의 수도권 계획논리와 상치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의 일방적인 서울 의존에서 탈피해 수도권을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다핵공간체계 확립이 절실한 실정이다.

경기권 다핵 자족도시는 수원-화성-안중을 주축으로 한 경기남부권, 성남-이천-여주를 주축으로 한 경기 북부권, 그리고 김포-파주-개성을 주축으로 한 김포파주권을 각각 거점핵으로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 수도권 계획논리와 상치

신도시가 소규모로 이뤄질 경우 경제규모의 왜소화로 인해 근본적으로 자족기능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신도시는 30만평 이상의 대규모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30만평 이상의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건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0만평 정도의 규모로 개발해서는 공공시설의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업성 측면에서도 타산이 맞지 않는다니 이래저래 경제성 없는, 왜소하고 나약한 신도시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지 않을는지 걱정이다.

이제까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경기도 자체의 도시기본계획을 만들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 관련법을 정비하는 등 '살기 좋은 경기도'의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천만인구로 접어드는 거대공간 경기도가 풀어야 할 숙제다.

盧椿熙(경기개발연구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