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방영 축소 움직임에 업계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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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얼마 전 한 애니메이션 업체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지금 업계에서는 KBS가 11월 정기개편에서 애니메이션 편성 비율을 거의 절반 이상 줄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편성을 줄이면 애니메이션 쿼터제에 따라 방영되고 있는 국산 애니메이션도 자연히 줄어들게 돼 타격이 크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쿼터제의 취지가 국산 애니메이션을 살리자는 것 아니었느냐"고도 했습니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에 확인차 전화를 걸었습니다. 협회 측은 "편성 시간을 축소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방송사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협회는 지난 주 'KBS의 애니메이션 편성 시간 축소에 따른 문제점 등에 대한 협회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언론사에 배포했습니다.

물론 KBS가 아직 공식적으로 '축소'입장을 밝힌 것은 아닙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쿼터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1999년부터 방송사들의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의 경우 1999년에 주간 평균 4백23분이던 것이 지난해는 3백90분, 올해는 3백34분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편성 시간이 줄어들면 아무리 45%라는 의무 방영 비율이 정해져 있어도 결국 국산 애니메이션의 양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KBS는 지금까지 국산 애니메이션의 주요 투자자였습니다. 방영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들면 신규 투자 역시 줄어들거나 미뤄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업계가 술렁거리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일선 PD들에 따르면 편성시간이 줄어드는 이유는 물론 시청률 때문입니다. 현재 애니메이션의 평균 시청률은 4~7%에 불과합니다. 이러니 다른 프로를 새로 넣어 시청률을 끌어 올리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 이는 '쿼터제'라는 제도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쿼터제는 명백히 시장 진입 조건에서 불리한 약자의 편을 들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제작자협회에서 인정한 것처럼 TV애니메이션은 방송 프로 중에서도 제작비 회수율이 가장 낮습니다(15~20%). 수익이 실제로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어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국산 애니메이션을 육성하려면 어느 단계까지는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지금은 지상파 방송이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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