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9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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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5. 대불련과의 인연

성철 스님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성철 스님은 당시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젊은 불자들이 새로운 불교, 대중의 불교, 인간의 종교를 창조하는 데 역군이 되어 줄 게야"라고 말하곤 했다.

대불련과의 첫 인연은 1965년 여름방학 무렵. 일요일마다 서울 북한산 도선사에서 수련을 해오던 14명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전국의 고승대덕(高僧大德.수행을 많이 한 큰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받는 '선지식친견 구도행각 법회'에 나섰다.

해인사를 들른 일행이 경북 문경 김용사로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 아침 일찍 점촌에서 출발,'김용사 입구'에서 내려 9㎞의 산길을 걸어야 했다.

중간에 작은 마을 인근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당시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 순수하고 불심이 돈독했던 터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탁발을 했다고 한다.4개조로 나눠 일곱 집을 돌면서 반야심경을 외워주고 얻은 밥을 가지고 냇가 그늘에 모여 앉아 나눠 먹었다.

절에 도착한 그들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信)을 보이고자, 또 성철 스님이 이미 그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3천배를 권하고 있었기에 법당으로 향했다.

일행을 맞은 성철 스님은 "3천배 할 때 남을 위해 한다"는 마음자세를 당부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3천배는 밤 8시 30분이 되어 끝났다.

다음날 성철 스님은 3천배를 마친 젊은 불자들이 법문을 청하자 쾌히 승낙했다. 만 이틀간 거의 20시간에 걸쳐 법문을 했다. 66년 본격적인 사자후(獅子喉)에 앞선 특별한 법문이었다. 불교의 근본사상인 중도(中道)에 대한 얘기였다.

당시에도 성철 스님은 그 엄격한 성정을 일러주는 일화를 남겼다. 첫날 법문을 듣던 대학생 몇 명이 점심을 먹은 후 피곤하자 낮잠을 잤다. 그 모습을 성철 스님이 지나가다 봤다. 성철 스님이 그들을 깨워 "공자가 낮잠 자는 제자를 썩은 나무라고 꾸짖었다"는 비유를 들어 질책했다.

이후 대학생들은 전혀 흐트러짐 없이 법문을 들었는데, 성철 스님도 대단한 애정을 가졌던듯 떠나는 학생들을 일주문 밖 멀리까지 배웅했다. 성철 스님은 "아직도 모자라는 것이 많다"며 바위 위에 걸터앉아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불련 학생들은 그해 겨울 본격적인 수행정진을 하기 위해 다시 김용사로 성철 스님을 찾아왔다. 성철 스님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50일간의 동안거(冬安居.겨울동안 칩거해 수행에 전념하는 것)에 참여키로한 것이다.

일과는 새벽 2시 30분부터다. 깨어나면 세수하고 바로 부처님 앞에서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선서부터 한다.3시부터 예불,4시부터 참선,6시 아침 공양 후 다시 참선, 점심 공양 후 오후 참선 및 운력(노동), 저녁 공양 후 참선, 밤 9시 취침.

당시 성철 스님이 특히 강조한 것은 일체의 책을 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대학생들은 절에서 안거하면서 불교 공부도 같이 하자는 취지로 왔는데,"책을 들지도 말라"고 하니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소리도 일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문자에 매달려 진리를 밝히려는 것은 어리석은 길이며, 오로지 화두(話頭)를 탐구해 진리의 광명을 찾아야한다"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참선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성철 스님이 강조한 또다른 부분은 기복사상에 따른 한국불교의 후진성. 성철 스님은 "염불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의 기복신앙이 불교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선(禪)에 철저하지 못하기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구현치 못하고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소 차분한 설명보다 꾸짖음에 익숙하던 성철 스님이 이처럼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개혁을 주장한 대목은 주목할만하다. 성철 스님이 그만큼 젊은 불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음을 확인케 해준다.

젊은 불자들 역시 성철 스님의 기대에 부응했다. 대불련 회원들은 그해 여름 방학에도 다시 김용사를 찾아와 가행정진(加行精進.보통 참선수행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정진하는 것)했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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