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 대전] '백색 우편물' 미국이 떨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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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전역에 탄저균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미 보건당국은 "지난 5일 플로리다주에서 탄저병 환자가 사망한 뒤 지금까지 최소한 아홉명의 탄저균 양성 반응자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특히 뉴욕 한복판과 네바다주 등에서도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흰 가루가 들어 있는 우편물이 잇따라 발견돼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 확산되는 탄저균 감염=플로리다주 보카 러턴시(市)의 타블로이드 신문사인 '아메리칸 미디어'의 사진편집인 로버트 스티븐스(63)가 지난 5일 탄저병으로 숨졌다.1976년 탄저병이 마지막으로 보고된 뒤 첫 희생자였다.

그는 애초 탄저병과는 관련이 없는 병으로 입원했으나 우연히 호흡기에서 탄저균이 검출됐다. 플로리다주 보건당국이 빌딩 사무실과 9백65명의 근무자를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신문사 사무실의 컴퓨터.키보드 등에서 탄저균이 검출됐고 지금까지 스티븐스의 동료 일곱명이 탄저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에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도 탄저병 환자가 발생했다. 록펠러센터에 입주한 NBC방송의 간판 앵커인 톰 브로커의 여비서가 지난달 18일 브로커 앞으로 배달된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피부 탄저균에 감염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브로커를 노린 범죄로 보고 특별수사를 하고 있다. 당시 우편물에는 성분을 알 수 없는 가루가 담겨 있었으며,성분 분석 결과 플로리다주에서 발병한 호흡기 탄저병과는 유형이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성명 미상의 이 우편물에는 발송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으며 뉴저지주 트렌튼의 소인만 찍혀 있었다. 한편 CNN방송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컬버의 소니 영화사 직원 한명이 흰 가루가 든 봉투를 개봉한 뒤 병원으로 이송돼 탄저균에 감염됐는지 검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바이오 테러리즘』의 공동 저자이면서 평소 생화학무기 관련 기사를 많이 쓴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에게도 흰 가루가 든 편지가 배달됐다. 편지에는 베이비 파우더처럼 생긴 분말과 함께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향후 공격 내용이 담겨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우편물에 생화학 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편집국 기자들을 긴급 대피시키는 소동을 벌였다. 문제의 흰 가루를 1차 성분 조사한 결과 탄저균 음성 반응을 보였지만 자세한 결과는 16일께 나올 예정이다.

같은 날 네바다주 리노의 마이크로소프트 지사에 배달된 한 우편물에서도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흰 가루가 발견됐고 다음날 3차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FBI와 보건당국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탄저병 검사를 하는 한편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외에 말레이시아 소인이 찍혀 있는 이 우편물을 취급한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다.

◇ 미 정부, 동요 막으려 부심=뉴욕 시민들은 12일 낮 TV 뉴스 등에서 "탄저균이 뉴욕에서도 발견됐다"는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발표가 흘러나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겁에 질린 일부 시민은 의사를 찾아가 탄저병에 잘 듣는 항생제로 알려진 시프로를 달라고 하는 등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연방 보건당국은 뉴욕 및 뉴저지주 병원에 긴급 공문을 보내 "탄저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연방 보건당국 차원에서 치료에 나설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항생제 처방을 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14일 "탄저균 추가 감염 사례는 없으며 탄저병이 확산한다는 징후도 없다"며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부시 대통령도 "생화학 테러 공포에 빠진 미국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며,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FBI와 보건당국은 역학조사 결과 탄저균 양성 반응자들이 우편물 속의 백색 가루를 통해 감염된 점에 주목하고 우정국과 함께 우편물 검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뉴욕=신중돈 특파원,서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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