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검찰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세칭 '이용호 게이트'에는 우리 사회의 '법의 지배' 실상이 그대로 압축돼 있다. 법과 보편적 규범을 제치고 지연.학연.혈연 등 온갖 패거리 연고관계가 얽혀 있다.

정치권력과의 연계의혹이 무성한 가운데 법집행의 중추인 검찰마저 얽혀들어 있다. 게다가 폭력배 출신까지 비리의 고리를 잇고 있다. 패거리 연고주의, 불법, 폭력 등 법의 지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 불신 받는 法집행 정당성

얼마 전 법의 지배를 둘러싼 공방이 있었지만 이런 사건을 두고도 법의 지배가 후퇴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들은 법의 지배가 실현되지 못한 데서 온다. 과연 어떻게 하면 법의 지배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법보다 이런 저런 연줄을 찾고 불법.탈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당장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죄의식이 따른다면 개선의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이지만, 이를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는 법집행기관의 불공정성이다.

나보다 강한 사람, 나보다 높은 사람에 대한 법집행이 불공정하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불법에 대한 심리적 면죄부를 준다. 한국인의 법의식에 관한 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결과가 있다. 한편에서 사람들은 법집행의 정당성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에서 사람들은 법을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례를 보자.2000년 12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중앙일보가 공동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문항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가 46.4%, "그런 편이다"가 48.7%로 나타나 있다.

응답자의 무려 95.1%가 법집행의 정당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응답이 74.7%에 이른다. 한마디로 현대 한국인의 법의식은 기회주의적이다.

여기에서 해답은 절로 나온다. 법의 지배 수준을 한단계 높이려면 기회주의적 법의식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려면 법집행의 정당성이 수긍돼야 한다. 검찰과 법원, 특히 법집행의 중심기관인 검찰의 공정성을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검찰 특별감찰본부의 조사결과 발표와 함께 법무부가 검찰개혁안을 내놓았다.

이 개혁안에는 종래 검찰제도 개선을 위해 논의돼온 여러 방안들이 담겨 있다. 특히 검찰조직상 상명하복 규정을 고쳐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부하검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두는 방안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고위층 구속에 대한 법무부장관 또는 검찰청장의 승인제 폐지도 중요한 변화다. 검찰의 기소독점을 견제하기 위한 재정신청 범위 확대도 오랫동안 주장돼온 내용이다. 그러나 검찰은 특별검사제 상설화는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자체 개혁안을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 비리사건을 통해 작은 제도개혁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과정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 정치 중립성 확보가 관건

제도개혁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제도개혁만으로는 검찰 문제의 핵심에 미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의 부패 의혹까지 불거진 것은 충격적이지만, 검찰개혁 과제의 본질은 여전히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있다.

여기에 대한 근본적 장애는 다름 아닌 검찰인사 문제다. 검찰조직은 사다리꼴의 계급구조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욕망은 인지상정이다. 그 인사권자의 배후에는 정치권력이 있다.

정치권력은 늘 검찰을 도구화하려 든다. 이런 구조 하에서 검찰에 대한 정치권력의 유혹은 어떤 제도로든 쉽게 물리치기 힘들다. 개혁안에 나와있는 인사위원회제도 개혁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결국 문제는 검찰의 직업윤리다.검찰은 선택해야 한다.

검찰조직 전체가 오명을 쓰고 법의 지배는 어떻게 되든 오직 사다리를 오를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몸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명예로운 검찰을 만들 것인가. 검찰 개혁과 이를 통한 법의 지배의 성패는 이 선택에 달려 있다.

梁 建(한양대 법대 학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