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25 재보선 현장을 가다] 1. 동대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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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 14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장안평역 광장. 대형 멀티미디어 차량에서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 '백학'이 흘러나온다. 화면에는 검사역을 맡은 탤런트 박상원이 비리정치인을 상대로 "당신을 잡아넣는 것은 시간문제야"라고 말하고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로 알려진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47)후보의 인지도 높이기 전략이다. 그는 이번 선거전에서 지역 이슈보다 정치 현안을 부각하면서 '대한민국 특별검사'라는 슬로건으로 바람몰이를 시작했다.

#2. 민주당 허인회(許仁會.37)후보의 지구당 사무실에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표어가 붙어 있다. 사무실에서 만난 許후보의 참모는 "우리는 선거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치문제에 대한 언급은 철저히 삼가는 대신 정부의 정책자금 융자제도 등을 영세 상공인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지난 수해 때는 청소.빨래.구호품 배달 등을 했다고 한다. 수리해준 가전제품만도 3천여개가 넘는다는 주장이다.

서울 동대문을 재선거는 洪후보에겐 'DJ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싸움'이다. 반면 許후보에겐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다.

고려대 선후배 사이지만 신경전이 치열하다. 서로를 "구청장 선거에 적당한 수준의 전략"(洪후보측),"정치싸움꾼, 저격수"(許후보측)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날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도 양측은 뚜렷이 대비됐다. 洪후보는 정부를 '조폭정권'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에 기대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목청을 높였다. 許후보는 "동대문 발전을 위한 여야 후보간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하며 지역발전론을 앞세웠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D문구점 주인 A씨(53)는 "386 데모왕보다 검사 출신이 낫지"라고 말했다. 반면 회사원 沈모(35.제기동)씨는 "정치신인인 許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했다.

양측은 모두 조직과 투표율이 당락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洪후보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김영구(金榮龜) 전 의원의 조직에 기대를 걸고 있고, 許후보는 이 지역의 주류층인 봉제업자들을 향해 적잖이 '발품'을 팔아온 점을 믿고 있다. 양측 모두 투표율이 올라갈수록 자기측에 유리하다고 믿는 눈치다. 지역 인구 비율은 호남 출신이 22% 정도, 영남.충청 출신이 합쳐서 18% 가량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민주노동당의 장화식(張華植.38), 여성운동을 해온 사회당의 김숙이(金淑伊.32)후보도 기성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심리를 부추기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강민석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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