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보혁틈에 낀 李총재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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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내 보혁(保革)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현 정권은 친북정권"이라는 김용갑(金容甲)의원의 대정부질문 원고 때문이다.

12일 김원웅(金元雄).김홍신(金洪信).서상섭(徐相燮).김영춘(金榮春)의원 등은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찾아 "김용갑 의원의 주장은 무리가 있는 만큼 당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다. 李총재는 "알겠다"고 짤막하게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분간 지켜본 뒤 성명서를 내는 등의 적극적 행동에 돌입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용갑 의원은 "원고를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6.25가 통일시도'라는 발언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면, 보수의 헤게모니가 YS와 JP에게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金의원은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당이 요즘 잘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용갑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보수중진 모임'의 의원들은 조만간 만나 金대통령의 6.25관련 발언, 대북 쌀지원 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여당을 맹공하는 와중에 李총재가 영수회담에 응한 것은 전술적 실수이고, 李총재의 대표연설은 너무 밋밋했다"며 李총재에게 강한 대여(對與)투쟁을 주문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당내 33명의 의원들이 소속돼 있다. 李총재는 출범 당시 "당내 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입장을 보인 바 있다.

당내 보수파의 한 의원은 "李총재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문제를 회피하려는 수비형 리더십은 양쪽의 비난을 받기 십상"이라며 "정국을 주도하고 리드하는 李총재의 과감한 지도력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반면 李총재의 측근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추상적 논쟁이 중요한 때가 아니라는 게 李총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민생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 보혁갈등과 관련한 李총재의 고민도 엿보인다. 李총재는 11일 서울 동대문을 정당연설회에서 연설원고에 있던 金대통령의 '6.25발언'에 대한 비판대목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는 당내 진보성향 의원들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런 李총재가 12일 강릉 보선 정당연설회에 참석해서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은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30년의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 교역 수준으로 올려놓는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이는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가 추진 중인 보수신당에 대구.경북권과 보수층이 관심을 갖는 것을 차단하려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최상연.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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